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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청량산에 고려 공민왕 사당 있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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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희조(왼쪽)씨와 마을주민이 정월대보름을 맞아 공민왕당에 제를 올리기 위해 어두운 밤 눈 덮인 산을 오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해발 600m 경북 봉화 청량산 꼭대기를 정월 대보름날 자정이면 해마다 오르는 주민이 있다. 산 아래 청량골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고 있는 이희조(69)씨다. 이씨는 올해도 13일 밤 11시 산을 올랐다. 기온은 영하 5도. 산길은 발목까지 눈이 쌓여 평소보다 오르기가 힘들었지만 손전등을 들고 한 발 한 발을 뗐다.

 꼭대기에는 고려 31대 공민왕(1330~74)을 모신 사당이 있다. 사당의 문을 열면 여의주를 입에 문 두 마리 용 그림 앞에 ‘공민왕신위’가 놓여 있다. 이씨는 여기서 650여 년 전 청량산에 머물렀던 공민왕께 청량골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지낸다. 30년 전만 해도 제관은 10여 명이 됐다. 한때는 정월 대보름과 백중 1년에 두 차례 지내는 동제의 비용을 전담하는 밭 한 뙈기도 있었다. 그 사이 어른들은 돌아가시거나 몸져 눕고 이제는 이씨와 권순덕(45)씨 두 사람이 동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씨는 “청량골에 터잡은 증조부 이래로 제사를 지냈으니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은 모시는 게 도리”라며 “아직까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4년 전부터는 다행히 대학을 나와 봉화군청에 들어간 아들 상윤(31)씨가 동행하고 있다. 5대를 잇게 된 것이다. 올해는 권순덕씨도 친구를 데려와 제관만 8명이 됐다. 이들은 자정에 맞춰 제사를 지낸 뒤 소원을 비는 종이를 태웠다.

 공민왕은 1361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蒙塵·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안전한 곳으로 떠남)했을 때 이곳 청량산을 최후의 거점으로 삼아 산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전해진다. 또 다섯 마리 말이 왕이 탄 수레를 끌었다는 오마도(五馬道)와 군율을 어긴 군사를 처형했다는 밀성대(密城臺) 등이 남아 있다. 공민왕은 이듬해 환도해 개혁정치를 펼치다가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고 후사 문제로 신하의 손에 피살 당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주민들은 그때부터 자신들 곁으로 왔던 왕의 원혼을 기리는 사당을 짓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청량산을 내려가면 주변에는 노국공주를 기리는 부인당과 어머니를 모신 왕모당, 딸당·사위당 등 공민왕 가족의 사당이 10여 곳에 산재해 있다. 2㎞쯤 떨어진 가송리 부인당에서도 이날 주민 20여 명이 동제를 지냈다. 청량산은 그만큼 공민왕과 인연이 깊은 산이다.

 상윤씨는 “TV 사극 ‘정도전’에서 다시 공민왕을 만나 감회가 남달랐다”며 “공민왕은 지금도 주민들 마음 속에 살아 있다”고 말했다.

봉화=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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