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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패션위크 개막 무대 휘저은 당진토박이 디자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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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자신의 옷과 브랜드 앞에 선 이정선 디자이너. 런던 패션위크 개막 무대를 맡았다. [사진 삼성에버랜드]

“처음엔 긴장도 고민도 많았는데…. 영광입니다. 런던 패션위크에서 오프닝한다는 게…. 지금은 기쁘고 좋아요.”

 14일(현지시간) 시작된 런던 패션위크 가을·겨울 시즌의 개막 무대 주인공인 한국인 이정선(37)씨는 숲 속에서의 정신적 치유를 주제로, 아웃도어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비 온 후 자동차 바퀴 자국을 메인 패턴으로 사용했고 숲 속에서 봄직한 색채감을 보여줬다.

 “이번 쇼를 디자인할 때 우울했어요. 마음이 무거웠어요.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이 너무 많았지요. 여행 가면 이런 옷을 입고 이렇게 쉬어야겠다는 상상에서 옷이 나왔어요.”

 그의 장기인 미니멀리즘적이면서도 모던한 느낌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 때문에 패션계에선 “세련되고 화려하면서도 여전히 순수한 느낌”(제시카 범퍼스), “(런던 패션위크로선) 환상적인 시작”(데이비드 와츠)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씨는 런던 패션위크가 사랑하는 디자이너다. 2010년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인스쿨인 센트럴세인트마틴 여성복 석사과정을 졸업한 이래 런던 패션위크 무대에 일곱 번 섰다. 메인 스테이지도 두 번째인데 올해엔 아예 개막 무대를 맡았다. 한국인으론 처음이다. 세계 최대 명품업체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40세 이하 젊은 디자이너에게 주는 영 디자이너 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그런 그이기에 어릴 적부터 도회적 환경에서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불태웠다고 여기기 쉽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런 캐릭터의 디자이너도 있지요. 전 공부해서 실력이 향상된 케이스에요. 천부적인 건 없고. 제가 ‘보그’란 패션 잡지를 접한 게 대학(충남대 의류학과) 2학년 때예요. 충남 당진에선 ‘보그’를 볼 수 없었어요. 엄마 아빠 몸빼 바지만 보지, 유일하게 트렌디한 걸 본 게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본 정도예요.”

 그는 당진초등학교를 나온, 말 그대로 당진토박이라고 했다. 지금 머리도 어머니가 “머리나 하라”며 끌고 간 당진의 한 미용실에서 한 파마라고 했다. IMF 세대(96학번)여서 월 50만원을 받고 패턴 작업을 하다가 영국 유학 길에 올랐다.

 “저도 처음엔 쿨한 게 뭔지 몰랐어요. 센트럴세인트마틴의 교수님이 ‘넌 쿨한 게 뭔지 몰라’라고 혼내셨을 정도예요. 학교 도서실에서 살았어요. 1920년대 ‘보그’부터 100번은 넘게 본 것 같아요. 전시도 많이 봤고요. 어느새 감이 오더라고요.”

 그래선지 “감각이 없는 것 같다”고 하소연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고 했다. “네가 게으른 거야. 감각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서지. 감각이 없는 게 아니야.”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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