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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525>집단적 자위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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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정원엽 기자

일본이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군사적 위협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평화헌법’ 이라는 안전판 덕분이었다. 하지만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새 지침을 마련했고, 작년엔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2+2)를 통해 ‘집단적 자위권’ 추진을 공식화했다. 이르면 6월에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이 명문화될 전망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무엇이고, 왜 관심의 초점이 되는지 살펴봤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자국이 공격받지 않아도 동맹국이나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가 공격받을 때 반격할 수 있는 권리다. 일본의 경우 동맹국인 미국이 북한이나 중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집단적 자위권에 따라 공격이 보장되는 식이다. 유엔헌장 42조에 의해 회원국들은 군사적 강제조치가 불가능하지만 집단적 자위권의 경우 예외적으로 유엔헌장 제51조에 보장돼 있다. 먼저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 차원에서 반격이 가능한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의 범주는 일반적으로 ‘자국과 깊은 관계에 있는 다른 우방국가’로 해석된다. 공식적으로는 안전보장이사회(P5, 미국·중국·영국·프랑스·러시아)만이 전쟁을 벌인 국가에 대한 군사행동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쟁 초기 개별 국가의 대응이 늦을 경우 상황 악화를 고려해 ‘안보리가 적절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선제적 자위권은 인정된다.

집단적 자위권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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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적 자위권의 논리는 개인에게 적용되는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의 권리가 국가들 사이에서도 인정된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1,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참화를 경험한 국제사회는 평화유지를 위해 유엔헌장을 마련하게 된다. 최초 유엔헌장 마련 당시 미국은 자위권의 개념을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라틴아메리카 제국이 준비하던 집단방위조직이 유엔 체제에서도 기능할 수 있도록 집단적 자위권이 포함됐다. 유엔헌장이 일체의 무력행사를 금지하고 있으면 예외적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 힘들어서다. 집단적 자위권이 없으면 개별 국가들이 맺은 군사동맹이나 상호원조조약이 모두 유엔헌장을 위반하게 되므로 개별조약의 기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개별 국가는 상호방위조약에 의해 다른 동맹국이 공격받을 경우 군사적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됐다. 예를 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경우도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일 안전보장조약도 집단적 자위권의 전제 하에 공동방위(제5조)를 규정하고 있다.

일본 집단적 자위권의 특수성

 일본은 2차대전의 전범국가로 전후 헌법 제9조(평화헌법)를 통해 ‘전수방위(專守防衛·방어를 위한 군사력만 사용)’를 국가의 방위지침으로 삼고 있다. 전수방위는 적의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력을 행사하고, 그 방위력 행사 형태도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도로 제한하며, 보유하는 방위력도 최소한으로 한정하는 등 수동적인 방위전략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위권의 발동도 세 가지 요건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돼 왔다. ① 일본에 대한 긴급하고 부정한 침해가 있을 때 ② 이 경우에 이것을 배제할 수 있는 다른 적당한 수단이 없을 때 ③ 필요 최소한도의 실력행사에 그칠 것이라는 조건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한다. 따라서 유엔헌장에서 인정하는 집단적 자위권을 일본이 행사할 경우 평화헌법에 위배된다.

일본 집단적 자위권 추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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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60년대 : 집단적 자위권, 해외파병 불가

 일본은 그동안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행사할 수 없다’는 기본 입장을 취해 왔다. 이런 공식 입장은 60년 체결된 신안보조약 심의과정에서 확립됐다. 59년 3월 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하야시 슈죠 내각법제국 장관은 “일본은 국제법적으로 개별적 및 집단적 자위권이 인정되고 있으나, 일본의 헌법하에서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당시 ‘일본 내 미군기지가 공격받을 경우 자위대가 방어에 개입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일본은 미군기지가 일본 영토 내에 있으므로 이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아니라 개별적 자위권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해 기시 수상은 “평화헌법의 특질상 어떤 경우에도 자위대의 해외 파병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② 70년대 : 미·일 방위협력지침(구 가이드라인) 마련

 72년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에도 ‘일본은 주권국가로 국제법상 모든 주권국가에 부여된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평화헌법의 제약하에서 일본에 대한 급박하고 정당하지 못한 무력공격에 대해서만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타국에 가해진 무력공격을 저지하는 소위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70년대 들어 일본이 미·일 동맹 강화를 추진하면서다. 일본은 78년 미·일 방위협력지침(구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양국의 군사협력 강화를 추진한다.

③ 90년대 : 주변 지역까지 미군 병참기지 역할

 냉전 종식 후 94년 한반도의 핵 위기가 발생하고 일본은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 97년 미·일 방위협력지침(신 가이드라인)을 맺는다. 이를 통해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의 정책 변화를 모색한다. 일본은 미군에 대한 ‘후방지역 지원’에 대해 ‘주로 일본의 영역에서 행해지지만,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과 별개로 일본 주변의 공해 및 상공에 있어서 행해지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일본 공해와 상공에서 자위대가 미군에 대한 물자 보급 등 병참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은 99년 ‘주변사태법’을 지정해 일본의 주변 지역까지는 사실상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받게 됐다.

④ 2000년대 초반 : 전 세계 해상자위대 파견

 이후 2001년 10월 일본은 9·11 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대테러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대테러대책특별조치법’을 제정했다. 여기서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후방지역’ 대신 ‘비전투지역’으로 바꿔 전 세계에 해상자위대를 파견해 미군의 테러전 지원 병참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일본 해상자위대는 2001년부터 인도양에 총 60여 척의 함정을 파견해 아프가니스탄의 대테러 진압작전에 참가한 미국·영국 등 다국적군 함선에 급유·급수 지원 등을 해왔다.

⑤ 2000년대 후반 : 아베 총리의 ‘적극적 평화주의’

 2006년 아베 신조가 총리에 취임하면서부터는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의 재구축에 관한 자문회의’를 구성해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기존 입장을 변경시키고자 했다. 중국의 급부상이라는 국제환경 변화 속에서 미군의 병참역할 이상의 적극적 역할을 도모했던 것이다. 하지만 2007년 9월 아베 정권이 막을 내리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구도 몇 년간 미뤄지게 됐다. 2012년 12월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대승하며 아베 총리가 복귀했고, 2013년 2월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의 재구축에 관한 자문회의’를 재발족시켰다. 아베 총리는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명분 아래 평화헌법의 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공세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이 추구하는 집단적 자위권의 청사진

 일본이 구상하는 ‘집단적 자위권’은 해상자위대의 소해정 활동이나 항공자위대의 수송활동 등 간접 지원의 형태를 넘어선다. 수륙기동전단의 상륙작전이나 항공자위대의 레이저 유도폭탄 투하와 같은 공격 능력 확보까지 포괄하고 중동~일본의 원유수송로 안전 확보 등 자국의 국익을 위해 군사력을 활용할 수 있다. 최근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에서는 적 기지공격론, 자위대 출동 기준 완화 등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아베 1기 내각(2006년) 당시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네 가지 유형을 정의했다. ▶공해상의 미 선박(군함) 방호 ▶미국을 겨냥했을 가능성이 있는 미사일의 요격 ▶평화유지군(PKO)에 참여한 기타 국가군이 공격받을 때 출동 경호 ▶해외에서의 후방지원활동 확대 등이다. 하지만 올해 일본이 추진 중인 집단적 자위권에는 ▶다국적군의 참가 ▶선박의 강제조사 ▶동맹국에 대한 무기와 탄약 공급이 포함돼 있고 그 범주도 ‘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까지 적용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는 사실상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향후 전망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적극적 평화주의’를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 사상’이라며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허용하는 헌법 해석 변경을 150일간의 국회 회기(6월 22일) 중 결론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3단계 추진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헌법 해석을 변경하고(1단계), 자위대법과 주변사태법 등 관련 법제를 정비한 뒤(2단계), 개별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정책 판단(3단계)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자신이 설립한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의 보고서가 마련될 4월부터 헌법 해석 변경 검토를 본격화해 가을 임시국회에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된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반대하는 한국과 중국은 구체적 청사진이 공개될 경우 입장을 밝히겠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운 일본의 논리를 깨기는 쉽지 않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국제사회가 일본의 ‘진의’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긴 했지만 주권국가가 보유한 권리를 의심만으로 반대하기는 어려워서다. 이와 함께 일본은 연내에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에도 변경된 집단적 자위권 행사 능력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정원엽 기자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구 주요 움직임
● 2013년 12월 4일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출범
● 2013년 12월 17일 국가안전보장전략, 신방위대강, 연 평균 50조원대 중기방위력정비계획 확정
● 2014년 1월 22일 아베 총리 국회 시정연설에서 “회기 중 헌법 해석 변경 결론”
● 2014년 2월 4일 총리직속간담회 통해 집단적 자위권 보고서 초안 회람
● 2014년 2월 중순 미·일·호주 연합훈련으로 적 기지 공격 훈련
● 2014년 4월 총리직속 간담회에서 집단적 자위권 보고서 최종안 제출
● 2014년 6월 헌법해석 변경 예정
● 2014년 하반기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집단적 자위권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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