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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헌법에서 고독사한 대한민국의 건국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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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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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한 사람의 인생을 생로병사로 요약하든 희로애락으로 표현하든 ‘탄생의 순간’을 가볍게 여길 순 없습니다. 탄생의 순간은 모든 인생을 설명하는 출발점이자 존재의 증거입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일회성과 고유성을 지닌 것은 탄생의 순간의 정보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탄생은 어떨까요. “국가의 주권은 시원성(始原性)을 특징으로 하므로 밑도 끝도 없이 문득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으로 정의된다. 국가 주권 자체가 세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는 사망하게 되면 후계자가 나올 수 없는 참으로 고독한 녀석이다.”(헌법학자 조문숙) 현대인이 국적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는 국가의 운명성을 해학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에 국가의 탄생 장면이 사라진 것을 아십니까. 전문은 뒤따르는 130개의 헌법 조항에 생명을 불어넣는 최초의 정신입니다. 이 최초의 정신에 국가 탄생 장면이 사라진 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쓰는 1987년 헌법의 전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있는데 ‘대한민국 정식정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법통과 계승을 말하면서 건국 정신은 빠진 것이죠. 사람의 인생과 비유한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잉태에 해당하고 정식정부는 탄생에 해당하며 4·19의 민주이념은 성장에 해당한다고 할 것입니다. 잉태와 성장은 있는데 탄생은 빠진 이 헌법 전문,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국가의 탄생, 즉 대한민국의 건국성(建國性)은 5·16 쿠데타로 헌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사라졌습니다. 62년 5차 개정된 헌법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3·1운동, 4·19의거, 5·16혁명을 차례로 나열하면서 1948년의 건국 정신을 슬쩍 없애버린 겁니다. 이때 없어진 건국성은 그 후 6차, 7차, 8차를 거쳐 87년의 9차 개정 헌법에 이를 때까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죠. 건국성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7차 유신 헌법 때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이란 구절이 삽입됐고, 전두환 대통령 집권 과정에서 만들어진 8차 개정 헌법엔 ‘제5민주공화국’, 즉 5공이 명시됐습니다. 유신 독재의 명분을 찾기 위한 조국 통일이나 쿠데타적 사건으로 집권한 신군부 정권의 정통성 콤플렉스가 개헌 세력의 관심사였을 뿐이었습니다.

 건국성에 관심이 없기는 현행 9차 개정 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전까지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으로 표현됐던 항일 독립성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란 구절이 추가됐습니다. 87년 6월 항쟁을 지배했던 민족·민주·민중 운동의 열기 때문입니다. 87년 헌법에서 독립성(민족성)과 민주성은 강화됐습니다. 하지만 건국성은 무참한 상황에서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여기까지가 한국 헌법에서 건국성이 고독사한 과정입니다.

 저는 한국이란 나라의 국격이 네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일제로부터 독립성, 주권국 탄생으로서 건국성, 빛나는 자유의 역사인 민주성, 현대 국가의 기반을 다진 산업성-. 이 네 가지 중에서 산업성은 역사의 논란과 평가를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쳐도 1948년부터 죽 있다가 시나브로 고독사한 건국 정신만큼은 헌법 전문에 다시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국회엔 국회의장 직속으로 개헌자문위원회(위원장 김철수)가 가동됐습니다. 강창희 의장의 개헌 의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감을 표출하면서 김이 빠졌습니다. 그렇다 해도 통일을 준비해야 하듯 개헌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헌을 논의할 때 국가 탄생의 순간, 건국성을 주요 의제로 올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