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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약사회 달려가 "법인약국 반대" 외친 여당 정치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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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허 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법인약국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플래카드 떼도 될 것 같다”(서병수 의원)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법인약국 추진하는 건 잘못된 정책이다.”(정병국 의원)

 지난 15일 부산시와 경기도 약사회 정기총회에서 새누리당 소속인 두 의원이 각각 한 말이다. 이날 전국에선 부산을 포함해 8개 시·도지부 약사회가 총회를 열었다. 하루 전후까지 합하면 주말 동안 10개 지부가 회합했다. 모임에는 어김없이 ‘법인약국 저지 결의대회’라는 부제가 달렸다. 23일 본부 격인 대한약사회가 정기총회를 여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약국 허용을 저지하기 위해 각 지역에서 화력을 모은 셈이다.

 이 자리에는 6·4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정치인들이 상당수 참석했다. 새누리당 서병수 의원과 권철현 전 의원(부산시장),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과 민주당 김진표·원혜영 의원(경기도지사), 민주당 송영길 시장과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인천시장) 등이다.

 출마하는 곳도 정당도 다르지만 이들은 거의 한목소리로 정부를 비판하며 약사회 편을 들었다. 국회 보건복지위 간사이자 새누리당 부산시당 위원장인 유재중 의원은 부산지부 행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한테 (정책 추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법인약국 걱정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이게 그리 간단한 문제일까. 법인약국이란 약사들이 모여서 법인 형태의 약국을 만들거나 지점 형태의 약국을 여는 걸 말한다. 10년 넘게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사안이다.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 경제를 활성화하고 약국 이용을 편리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12월 13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설립을 허용키로 했다. “규제 완화는 돈 안 들이고 투자를 촉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경기회복 불씨를 살리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로 관철됐다. 하지만 약사회는 “동네약국이 몰락하고, 약값은 폭등할 것”이라며 결사반대하고 있다. “의료민영화 수순”이라는 주장이다. 약사회는 여차하면 약국 파업도 불사할 태세여서 의료법인 문제와 더불어 의약계의 뜨거운 감자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약사회 편을 드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그중에는 친박근혜계 핵심으로 불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약사회 회원이 3만 명(2012년 기준)이 넘고, 골목마다 위치한 약국의 민심 전파력은 익히 알려졌으니 정치인들이 거대한 이익단체의 요구를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현실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대통령까지 경제를 살리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마당에 여당 실세까지 나서 눈앞의 표를 의식해 특정 단체와 눈높이를 맞추는 모양새는 지나치다. 민감한 정책 사안에 대해 대통령 따로, 여당 따로의 행보라면 국민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나.

허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