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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이 남자, 피겨 쇼트 세계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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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하뉴 유즈루가 14일(한국시간) 열린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스핀 연기를 펼치고 있다. [소치 AP=뉴시스]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곱고 앳된 얼굴이다. 그런데 실력은 외계인급이다. ‘별에서 온 그대’다.

 일본 남자 피겨스케이팅 선수 하뉴 유즈루(20)가 화제다. 하뉴는 14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101.45점(기술점수 54.84점, 구성점수 46.61점)을 기록했다.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100점을 돌파하며 세계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까지 세계선수권 3연속 우승을 차지한 패트릭 챈(24·캐나다)이 97.52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하뉴는 게리 무어(영국 가수 겸 기타리스트)의 ‘파리지엔 워크웨이’ 노래에 맞춰 물 흐르듯 연기했다. 첫 과제로 4회전 점프인 쿼드러플 토루프를 깔끔하게 성공한 하뉴는 트리플 악셀(3회전 반)과 3회전 연속 점프(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등 고난도 점프를 이어갔다. 아사다 마오(24·일본)는 좀처럼 성공시키지 못해 애태우는 기술인 트리플 악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기타 선율에 맞춘 손짓은 여자 선수처럼 섬세했다. 2분50초의 연기를 마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하뉴에게 일본 팬뿐만 아니라 러시아 관중의 갈채가 쏟아졌다.

 1994년 일본 미야기현에서 태어난 하뉴는 누나를 따라 네 살부터 스케이트를 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트리플 악셀을 뛸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2010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김연아의 전 코치였던 브라이언 오서와 2012년 만나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293.25점으로 개인 최고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달 말 열린 전일본선수권에서는 무려 297.80점까지 나왔다. 국내 대회라 공식기록으론 인정되지 않았지만 패트릭 챈이 보유한 세계 기록(295.27점)을 뛰어넘는 점수였다.

 하뉴는 디즈니 캐릭터인 ‘곰돌이 푸우’를 좋아한다. 푸우를 보면 긴장이 해소돼 경기가 잘 풀린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경기장에도 푸우 인형과 티슈 케이스를 가지고 다닌다.

 순한 외모에 아기자기한 취미까지 갖춘 하뉴를 보면 고생 한 번 안 하고 자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의외로 악바리다. 그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센다이에 있는 전용링크장이 무너지자 전국 각지를 돌며 연습했다. 천식을 앓고 있어 다른 선수에 비해 체력이 달리지만 훈련을 게을리하는 법도 없다. 러시아 피겨 황제 예브게니 플루셴코(32)가 구사하는 비엘만 스핀은 몸에 무리가 간다는 코치의 만류에도 시도해 자신의 주무기로 만들었다. 역경을 이겨낸 하뉴는 15일 새벽 프리스케이팅에서 금메달에 도전한다.

 하뉴가 우상으로 꼽은 플루셴코는 불의의 부상을 당해 올림픽 무대와 영원히 작별했다. 14일 경기를 앞두고 연습하던 플루셴코는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다 갑자기 허리를 붙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한참 동안 몸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통증이 가시지 않자 그는 결국 기권했다.

 경기 후 플루셴코는 “충분히 스케이트를 탔다는 신의 뜻인 것 같다. 나이는 아직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나는 이미 12차례 수술을 한 몸이다. 건강을 위해 은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플루셴코는 이번 올림픽에서 첫 정식 종목이 된 피겨 단체전에 출전해 러시아의 금메달 획득에 일조했다.

오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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