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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거미줄 운하, 겨울엔 오렌지 빙상군단 놀이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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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네덜란드 풍차마을 킨데르데이크에서 시민들이 스케이팅을 즐기고 있다. 운하가 많은 네덜란드는 겨울이면 곳곳이 빙판으로 변한다. [AP=뉴시스]
남자 500m 스피드 스케이팅을 휩쓴 네덜란드 3인. 왼쪽부터 요하너스 스메이컨스(은메달)와 쌍둥이 형제 미헐(금)·로날트 뮐더르(동). [소치 AP=뉴시스]

캐나다 일간지 더글로브앤드메일은 11일 “네덜란드가 스피드 스케이팅(빙속)에서 강세를 보이는 건 ‘물고기가 수영을 한다’는 말처럼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라면서 “스케이팅을 즐기는 문화적 전통과 과학적 훈련이 오늘날 네덜란드를 압도적인 빙상 강국으로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11일까지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네덜란드가 수확한 메달 7개(금 3·은 2·동 2)가 모두 빙속에서 나왔다. 8일 열린 남자 5000m에서 스벤 크라머르와 얀 블록하위선·요릿 베르흐스마가 금·은·동을 휩쓸었다. 9일에 여자 3000m에 출전한 이레너 뷔스트가 금메달을 보탰고, 10일에도 남자 500m에서 미헐 뮐더르와 요하너스 스메이컨스, 로날트 뮐더르가 1~3위를 차지해 시상대를 오렌지빛으로 물들였다. ‘한국 빙속 쾌속세대’의 간판 이승훈(5000m)과 모태범(500m)은 네덜란드 선수들의 기세에 눌렸다.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다. 네덜란드는 1928년 이후 2010 밴쿠버 대회까지 금 29·은 31·동 26 등 총 86개의 메달을 땄는데, 이 중 95.3%인 82개가 빙속 종목이다.

 ‘빙속 강국 네덜란드’는 선천적인 장점에 후천적인 노력이 더해져 탄생했다. 게르만족에 속하는 네덜란드는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다. 200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세계 각국 체격조건 보고서에서 네덜란드는 성인 남성(23~34세) 평균 키가 1m83.7㎝로 세계 1위에 올랐다. 평균 1m73.9㎝(19~25세 기준)인 한국 성인 남성에 비해 10㎝ 가까이 크다. 쇼트트랙에 비해 직선 주로가 길고 곡선 주로 또한 완만한 빙속에서는 스트로크(한쪽 발로 얼음을 밀치면서 다른 발로 미끄러지는 기술) 수가 같을 경우 다리가 긴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스케이팅이 일상에 뿌리 내린 생활방식 또한 영향을 미쳤다. 전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인공 제방과 운하가 발달해 겨울철에 스케이트를 즐기는 게 일상이 됐다. 국민 거의가 개인 스케이트를 가지고 있다. 한겨울에는 표면이 꽁꽁 언 물길을 스케이트로 달려 출퇴근하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전국 수로의 표면이 15㎝ 이상 얼면 전국 11개 도시를 연결해 200㎞ 이상을 달리는 스케이팅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엘프스테덴토흐트(Elfstedentocht)’라 불리는 이 대회는 1909년 시작돼 105년 역사를 자랑한다. 참가선수는 3만~4만 명이다.

 네덜란드인들이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즐겨 이용한다는 점도 스케이팅 발전에 기여했다. 사이클과 스케이트는 허벅지 등 쓰는 근육이 거의 같다. 모태범·이상화도 여름에는 사이클 훈련을 병행하며 근육을 단련한다. 자전거와 스케이트를 즐기는 네덜란드의 일상 자체가 효과적인 훈련인 셈이다.

  네덜란드는 13세기께 나무 바닥에 쇠날을 부착해 요즘과 비슷한 모양의 스케이트화를 만들었고, 17세기 무렵부터는 이를 활용해 각종 대회를 열었다. 90년대 말 등장해 빙속의 혁신적인 기록 단축을 이끈 클랩 스케이트(날 뒤쪽이 부츠의 뒷굽과 분리되는 방식)도 네덜란드 작품이다.

 선수 발굴과 육성에도 적극적이다. 유망주에게 학비와 훈련비를 지원하며, 400m 트랙을 갖춘 전국의 링크 20여 곳에서 2만여 명의 선수를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한국의 양궁과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인들도 ‘빙속 국내 1위는 곧 세계 1위’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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