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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왜 '1인 체제' 구축에 나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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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차이나랩 대표
[일러스트=강일구]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후안강(胡鞍鋼) 칭화(淸華)대 교수는 중국엔 현재 7명의 대통령이 있다고 말한다. 7명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하고 일사불란하게 중국을 통치하는 모습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집단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집단으로 일을 나눠 하는 시스템으로 미국의 1인 대통령제보다 더 민주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난해 7월엔 이 같은 생각을 정리해 『중국집단지도체제(中國集體領導體制)』라는 책을 냈다. 한데 그의 책이 자칫 휴지통에 들어갈 운명에 처했다. 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집단 지도라는 과두 체제의 틀에서 벗어나 빠른 속도로 ‘1인 체제’를 굳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1인자 행보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부터다. 두 달 전 중국을 찾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당초 리커창(李克强) 총리와의 만찬이 예정돼 있었으나 이 일정은 갑작스레 시진핑 주최의 연회로 바뀌었다. 시진핑은 또 관례대로라면 총리가 주재해야 할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도 자신이 직접 회의를 이끈 것은 물론 중요 담화까지 발표했다. 또 신장(新疆)공작협조영도소조 조장인 위정성(兪正聲) 정협 주석을 제쳐놓고 자신이 신장문제에 대한 전략적 조정을 언급해 월권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지난해 11월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설립이 결정된 ‘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와 ‘국가안전위원회’ 모두 결국엔 시진핑이 이끌게 됐다.

 중국은 진(秦)·한(漢) 이래 황제와 재상의 권한을 나누는 ‘제상(帝相) 분권’의 전통이 있다. 중국 공산당 또한 총서기는 정치와 외교·안보 등 총괄적 업무를, 총리는 경제를 중심으로 구체적 사무를 맡는다. 그리고 당내 여러 소조를 두고 이를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나눠서 관리한다. 후안강이 말하는 집단 지도다. 총서기는 여러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하나로 ‘동급자 중 첫째(first among equals)’라는 말을 듣는다. 총리가 총서기가 이끄는 소조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가 누구를 이끈다는 인상을 주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한데 지난달 구성된 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에서 조장은 시진핑, 부조장은 리커창으로 분명한 상하의 차이를 뒀다.

 시진핑은 이제 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 전면개혁심화영도소조 조장, 국가안전위원회 주석 신분으로 확고하게 1인 체제를 다져가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이래 최대의 권력을 확보했으며 외관상으론 덩샤오핑(鄧小平)의 위치를 능가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가 안정화, 나아가 제도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던 시점에서 시진핑의 1인 체제 구축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개혁의 필요성 때문이다. 시진핑은 지난해 10월 “이제 중국의 개혁은 단단한 적을 공격해야 하고 깊은 물을 건너야 하는 시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의 개혁은 기존 이익구조를 타파해야 하는 고비를 맞았는데 이를 어느 한 부문에만 맡겨선 ‘힘이 마음을 따르지 못하는(力不從心)’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는 것이다. 결국 시진핑이 직접 나서 개혁의 완성이라는 대임(大任)을 수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역사학자 샤오궁친(蕭功秦)이 “중국은 현재 강인(强人)을 필요로 한다. 권력 집중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시진핑의 1인 체제를 가능케 하는 둘째 요인은 보시라이(薄熙來)에서 시작해 저우융캉(周永康)으로 불똥이 튀며 불거진 집단지도체제의 폐해다. 현재 중국에선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측근들에 대한 부패 조사가 한창이다. 저우 역시 부패 혐의로 처벌될 것이라 한다. 필자가 보기에 저우의 진짜 문제는 부패라기보다 그가 보시라이를 감싸면서 보여줬던 무리한 행태다. 그는 보시라이 실각을 막으려 무력까지 동원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른바 2012년 3월 말의 정변설이다. 저우는 부하를 동원해 중국 권력의 심장부인 중난하이(中南海) 포위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어떻게 이런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저우는 당시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서열이 가장 낮았다. 그러나 자신이 맡고 있던 정법위원회 권력을 극도로 팽창시킨 결과 공안과 무장경찰, 검찰, 국가안전부 등에 파벌을 형성할 수 있었고 나아가 무력 시위 내지 정변 도모까지 꿈꿀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집단지도체제하의 분업 시스템에 따라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저우가 맡고 있는 분야엔 전혀 간여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집단지도체제는 황제와도 같았던 마오쩌둥 1인 치하의 폐해가 재발되는 걸 막기 위해 덩샤오핑이 부활시킨 중국 공산당의 통치 시스템이다. 집단지도체제가 각 파벌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고 무엇보다 ‘괴물 황제’의 등장을 예방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엔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중국을 통치하는 것을 두고 ‘구룡치수(九龍治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 시스템도 30년 정도 작동하다 보니 저우의 경우처럼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결과 다시 권력의 집중이 희구되며 시진핑에 의한 1인 체제 탄생을 자극하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돈다. 우리 또한 ‘87년 체제’에 대한 재검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 않은가.

유상철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