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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일방통행식 고용대책 … 기업·근로자가 안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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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박근혜 대통령은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고 복지와 일자리 분야 부처 간 협업을 강조했다. 여성가족부는 서울청사에서 화상으로 이날 회의에 참여했다. 박 대통령이 모두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문정 한국동서발전 인사팀 차장, 김대권 경인기계 직원, 박 대통령, 서대연 천안시청 자립지원직업상담사, 김병래 청년위 정책자문단. [세종=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12월 정부는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생애주기별 경력지원방안’을 내놓으려 했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없애고, 전업주부를 노동시장에 끌어들이기 위한 정책이다. 아빠의 육아휴직을 늘리고, 육아휴직 대신 근로시간을 단축해 쓸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당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안에 꾸려진 ‘일가정 양립 일자리위원회’에서 노·사·정 대표들이 접점을 찾아가고 있던 때였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정책을 발표하려 했으니 노사정위가 강하게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노사정위 고위관계자는 “정부에 ‘노사정 간에 합의를 이끌어낸 뒤 발표해야 한다. 정부가 일방통행식으로 가면 향후 임금체계 개편과 같은 각종 고용현안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며 강한 어조로 항의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 발표는 미뤄졌다. 이 방안은 이달 4일 발표됐다.

 고용 정책의 당사자인 기업과 근로자가 정책 입안과정에서 제외되는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추진계획’이 그것이다. 이 정책이 발표되자 노사정위는 “노사가 한창 논의 중인 사안을 덜렁 발표했다”며 “사전에 노사정과 상의도 없었다”며 불쾌해했다.

 11일 고용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올해 중점 추진할 업무를 보고했다. 근로시간단축, 시간단축형 일자리 확대, 육아휴직을 대체할 근로시간 단축제도 도입, 일·학습 병행제 활성화와 같은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망라됐다. 그런데 노사관계와 노사정 대타협에 대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부실했다. 노사관계에 대해선 ▶차별시정 강화 ▶법과 원칙 준수 ▶공공기관 정상화가 전부였다. 노사정 대타협과 관련해선 ‘임금체계 개편과 근로시간 혁신, 생산성 제고방안을 위한 사회적 대화 활성화’가 고작이다.

 문제는 임금체계 개선이나 고용의 유연화와 관련된 정책들이 이미 발표되거나 법안으로 입법돼 논의 자체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업무보고에 없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60세로 정년을 늘리는 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정부는 법이 통과된 뒤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으로 정년 60세가 강제된 상황에서 임금을 일정시점에 떨어뜨리는 임금체계에 대해 노동계는 곧바로 거부했다. 앞으로도 노동계가 임금구조 개편에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선 정부가 새누리당과 손잡고 이달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정년이나 근로시간 단축이나 법으로 먼저 정해놓고 노사 간에 임금문제를 논의토록 한다는데, 이는 선후가 바뀐 것”이라며 “고용정책이 당사자인 기업과 근로자를 제외한 채 정부의 일방통행식으로 진행돼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이달 4일 노사관계와 사회적 대화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는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 휴일근로시간 폐지, 공공기관 개혁, 정년연장 준비 본격화 등 굵직한 고용현안을 둘러싸고 사업장에서 노사갈등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노사정위원회를 축으로 하는 사회적 대화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접근방법에 변화가 없으면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용부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캐디·레미콘 기사·택배기사와 같은 특수고용직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30인 이하 중소기업에는 퇴직연금기금을 마련해 근로자의 퇴직 후 생활안정을 꾀하기로 했다. 또 고의적이고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면 체불임금의 2배 범위 안에서 일정액을 체불근로자에게 배상토록 하는 체불임금 부가금제도를 도입한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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