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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 아직도 위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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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유 알레르기가 있는 한 초등학생이 학교 급식에 나온 우유 섞인 카레를 먹고 쓰러져 뇌사(腦死) 상태다. 11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알레르기 학생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위 사진은 한 학교의 급식 모습.

인천의 한 초등학교를 다니던 김찬희(10)군은 벌써 11개월째 의식불명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다. 학교 급식에서 우유 섞인 카레를 먹고 나서부터다. 김군은 우유 알레르기가 있다. 당시 담임교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학년 초 부모가 작성한 학교기초상담조사서에 이 사실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고 당일인 지난해 4월 김군이 우유 섞인 카레를 먹자마자 괜찮은지 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김군은 “괜찮다”고 말한 후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학교 관계자는 “김군이 괜찮다고 말해 교사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음식 알레르기가 아나필락시스(전신 쇼크)가 올 정도로 심각한 것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우유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이 학교 급식 시간에 무방비로 우유를 먹었다는 사실이다. 학교 측은 “배식을 기다리던 김군에게 담임교사가 카레를 먹으면 안된다고 알렸지만 본인이 가서 받아서 먹었다”고 말했다. 학교 안인데도 생명과 직결된 건강 문제를 초등학생 본인의 의지에만 맡겼다는 걸 자인한 셈이다.

 과연 이런 사고는 해당 학교와 담임 교사의 실수에서 비롯한 일회성 비극인 걸까. 그러나 많은 학부모들은 “학교의 알레르기 학생에 대한 관리가 너무나 허술하다”며 “언제라도 다른 학교에서 똑같은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김군 사고에도 불구하고 교육당국이 알레르기 학생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군이 의식을 잃은 지난 11개월 동안 달라진 건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알레르기 학생에 대한 관리를 그저 학교 재량에 의지할 뿐이다. 교육부나 시·도 교육청 모두 알레르기 학생에 대한 실태나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 지 여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 사이 교육부가 법을 고치긴 했다. 알레르기 유발 식품이 학교 급식에 들어갈 경우 이를 ‘학생에게 알리고 급식시 표시’하도록 학교급식법을 지난해 5월 개정했다. 또 11월엔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식재료가 표시된 월간 식단표를 가정통신문으로 보내고,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하며, 주간 식단표를 식당과 교실에 게재해야 한다는 시행규칙도 새로 만들었다.

 그러나 확인해보니 이 시행규칙은 교육부가 이미 시·도 교육청으로 지침을 내린 사항이었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2012년 9월 교육부에서 내려온 알림형식의 지침”이라며 “관내 학교에 모두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 지침은 김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학교측에 전달된 상태였다는 얘기다. 시행규칙 하나 만들었다고 김군 같은 사고가 또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의 주 업무는 교육 관련 법령·제도 개선이고 (학교) 지도·감독 권한은 시·도 교육청에 있다”며 “교육부 내에서 학교 급식 담당을 맡은 실무자는 단 2명뿐”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 4월 알레르기 학생을 학교 단위(학교별)에서 파악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도 했다. 책임이 교육부가 아닌 시·도 교육청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학교 지도·감독 권한이 있는 시·도 교육청은 얼마나 제대로 관리를 하고 있을까. 관내 학교에 몇 명의 알레르기 학생이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올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알레르기 학생 수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를 포함해 서울시를 관할하는 서울시교육청은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다. 시교육청은 2010년엔 ‘알레르기 학생 관리 매뉴얼(비만·식품알레르기 영양상담 매뉴얼)을 전체 초·중·고에, 2011년엔 식품 알레르기 관리 교재(식품 알레르기 이렇게 알아봐요)를 전체 초등학교에 배포했다. 그러나 서울시 학교마다 알레르기 학생이 얼마나 있는지, 또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결국 학교가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만큼 조금만 소홀히 관리하면 언제든 큰 사고가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삼성서울병원 아토피환경보건센터 한영신 박사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 중 알레르기 반응을 경험한 경우가 15%고 3~5%는 지속적으로 알레르기에 고통받고 있다”며 “수가 적어 보일 수도 있지만 심한 경우 목숨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빨리 현황을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외국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우발적 사고는 외국에서도 발생했지만 대처 노력은 달랐다. 2012년 일본 도쿄 초우후시의 한 초등학교 학생이 학교 급식으로 나온 치즈가 들어간 감자전을 먹고 사망했다. 시교육위원회에선 사고 검증위원회를 꾸렸고, 국내 교육부에 해당하는 문부과학성은 일본 전역을 대상으로 알레르기 학생 조사와 급식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미국에서도 같은해 버지니아주 초등학생이 땅콩 알레르기 때문에 숨졌다. 이후 알레르기 쇼크 치료제(에피네프린)를 학교별로 갖춰야한다는 법이 만들어졌다.

 미국 교육계에 40년째 몸담고 있는 수지오 로스앤젤레스 3가 초등학교 교장은 “다양한 민족이 섞여 있어 음식 알레르기 같은 신체적인 문제뿐 아니라 종교적 이유로 학생이 가려야 하는 음식이 많다”며 “급식 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별 응급(emergency) 카드에 부모 외에도 2차 연락자를 적어놓고 상황에 따라 구조요원에게 조치를 받겠다는 서명까지 받는다”고 덧붙였다. 알레르기 치료제는 항시 구비해 둔다고 한다. 학교 전 직원은 음식 알레르기·치료제 사용법 연수(training)를 받는다. 심지어 학부모가 자녀 반 아이들에게 간식을 돌릴 때도 담임 교사는 물론 다른 학부모들에게 편지나 이메일로 미리 알려야 한다.

 하지만 국내 학교는 이런 배려가 거의 없다. 알레르기 치료제도 구비해 놓을 수 없다. 처방전이 필요한 의약품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처방을 받은 학생 부모에게서 치료제를 받아 학교에 두는 건 가능하다”며 “이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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