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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a, 2=b … 수학문제로 위증 모의, 마약범 암호편지 들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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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구두점으로 나누어진 각 숫자는 1=a, 2=b…(중략)…20=t, 21=u 등 영문 알파벳 순서, +- 등 수식기호는 단어 구분

미국 범죄드라마처럼 교도소 검열을 피해 수식으로 된 암호편지를 친구에게 보내 법정 위증을 시킨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중·고교를 다니며 알게 된 유학생 출신 마약범 두 명이 벌인 일이다.

 필로폰 소지·투약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공익근무요원 이모(32)씨는 지난해 8월 27일 역시 마약범으로 군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회사원 강모(28)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엉뚱하게도 “You like math question right? Solve this”라며 수학 문제를 풀어보라는 내용이었다.그런데 “23.8.5.14+9+3.1.12.12-21+21.16+6.15.18-23.9.20.14.5.19.19…(중략)”라는 식으로 한두 자리 아라비아 숫자 사이에 구두점이 찍혀 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수식이었다. 9월 1일 이씨는 강씨에게 비슷한 수식 암호편지를 한 통 더 보냈다. 두 달 뒤인 11월 21일 강씨는 친구인 이씨의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내가 먼저 구속되면서 함께 살던 이씨에게 짐을 맡겼는데 그 안에 미국인 친구 크리스토퍼가 두고 간 흰색 가루(필로폰)가 든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 집에서 발견된 필로폰은 제3의 미국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암호편지의 의미는 두 달 만에 들통이 났다. 당시 항소심에 공판부 검사로 출석한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 김성동(사법연수원 31기) 검사의 의심을 사면서다.

 김 검사는 “두 사람이 같이 산 적이 없는데도 강씨가 이씨만이 아는 필로폰의 위치를 정확히 말했다”며 “또 관련 없는 미국인까지 내세워 이씨의 마약 소지 혐의를 벗기려고 거짓 증언한 게 수상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 검사는 위증 공모 혐의를 두고 강씨의 감방을 압수수색했다. 거기서 이씨의 편지들과 아라비아 숫자를 알파벳에 대응시켜 놓은 ‘암호표’가 나왔다.

 김 검사가 암호를 풀어보니 복잡한 수식들은 사실 미국에서 비행 청소년들이 흔히 사용하는 속어 형식의 짧은 영문이었다. “경찰(pigs)이 내집(pad)에서 마약(shit)을 발견했는데 내가 법정증인 신청을 하면 ‘나는 대마(bud)만 하고 마약(ice)은 안 한다. 너의 친구가 두고 간 것’이라고 증언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김 검사는 “처음에는 단순히 수학문제와 숫자와 알파벳 글씨체를 연습한 메모 정도로 생각했었다”며 “의미 없는 수식을 나열해 친구에게 보낸 게 이상해 알파벳을 대입해 보니 공모의 증거가 나왔다”고 말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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