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학으로 세상보기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가치

중앙일보

입력 2005.03.17 18:31

업데이트 2006.07.0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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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태초에'라는 구절의 히브리 원어(영역)를 보면 'in the beginning of'로 돼 있다. 이는 'in the beginning of time'이라는 의미인데 창조주는 인간을 축복하는 도구로서 하늘과 땅이라는 구조를 만들기 전에 먼저 시간을 창조하였음을 뜻한다.

과학적으로도 우리가 사는 우주는 우주 대폭발, 즉 빅뱅이라는 오래 전의 천지개벽 사건으로 시작되었고 이때의 엄청난 에너지로부터 빛과 물질이 만들어졌음이 알려져 있다. 즉 시간의 개념이 필요 없는 영원이라는 상태로부터 시간의 존재가 나타나는 시공의 영역이 시작된 것이다.

시간이란 어떤 변화하는 사건을 기술하는 데 필요한 물리량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은 모든 만물과 피조물이 다 시간의 흐름 안에서 변하도록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육을 입고 있는 한, 시간을 벗어나 살 수 없고 계속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영(靈)이며 사랑인 창조주는 시간의 한계를 넘어 영원히 스스로 존재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더구나 이 창조주는 인간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공허한 마음속에 끝없는 사랑으로 채워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간 안의 인간과 시간 밖의 창조주가 과연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주는 것이 시간의 '상대성'이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항상 상대적이다. 달리는 관찰자의 시계는 정지해 있는 시계보다 천천히 가는 것이다. 따라서 주어진 두 사건 사이에 흐른 시간은 빨리 움직이는 관찰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짧게 느껴지게 된다.

이렇게 시간의 개념은 관찰자의 움직임에 따라 늘 달라지지만 우주에는 변하지 않는 속력이 존재하는데 바로 빛의 속력이다. 즉 1초에 약 30만km를 날아가는 빛은 모든 관찰자에게 항상 같은 값의 속력으로 측정되는데 이는 지구상의 그 어떤 물체도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인 한계속력이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광속으로 달리는 관찰자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다는 것이다. 즉 상대적으로 거의 정지 상태인 지구상에서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으로 모든 사건이 분리되지만, 광속으로 달리는 빛 안에서는 시간을 벗어나는 '영원한 현재'의 순간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87년 2월 23일 칠레의 한 천문대에서는 우주에서 날아온 밝은 빛이 관측됐다. 1987A라고 명명된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빛인데 이 별은 지구에서 17만 광년 떨어진 별이다. 즉 이 별빛이 지구에 도착하기까지는 지구상의 시계로 17만 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광속으로 움직이는 가상의 우주선을 타고 그 빛과 함께 날아온 관찰자에게는 지구까지 오는데 정확히 0초의 시간이 흐르게 된다. 여기서 17만 년과 0초의 차이는 시간의 많고 적음의 차이 정도가 아니고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시간 안의 세계와 시간 밖의 세계라는 엄청난 차이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빛은 시간의 영역을 벗어난 세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빛의 존재를 통해 인간의 삶 속에 임재하는 시간 밖의 보이지 않는 창조주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기에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귀한 선물이다. 왜냐하면 오직 인간만이 시간 밖에서 끊임없이 공급되는 창조주의 사랑을 받아 그 형상을 닮은 사랑의 인격으로 변화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인간이 육을 입고 사는 동안, 즉 시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육이 있는 동안에 봄볕의 따스함을 받아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땅에서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의미일 것이다.

제원호 서울대 교수.물리학

모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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