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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문제는 상상력 … 미학은 미래의 경제학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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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유홍준 교수(오른쪽)는 “진중권 교수와 나는 미학계의 ‘이단’이다. 학교가 요구하는 미학을 안 하고 뛰쳐나가 자기가 하고 싶은 미학을 했다”고 말한다. 둘 다 “지적인 여행을 많이 하라”고 권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학 오디세이 1~3
진중권 지음
휴머니스트, 328~368쪽
각 권 1만7000원
(3권 1만9000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7
유홍준 지음
창비, 324~472쪽
각 권 1만6500원
(7권 1만8000원)

한 사람은 대학 배치표에 적힌 ‘미학(美學)과’라는 이름이 예뻐서 무작정 “나 이 과에 갈래”를 외쳤다고 했다. 다른 이는 미학과에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3일간 눈물로 반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렇게 ‘미학’이 뭔지도 모른 채 덜컥 미학이란 학문에 발을 들였던 두 사람, 이제는 한국의 대표적 미학자이자 대중과 소통하는 스테디셀러 저자가 됐다.

 1993년 초판 이후 답사 열풍을 일으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유홍준(65)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와 그 이듬해 출간돼 올해로 발간 20주년을 맞은 『미학 오디세이』의 저자 진중권(51) 동양대 교수다.

 서양미학(진중권)과 동양미학(유홍준)을 주제로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 15일 서울 마포구 휴머니스트 출판사 사옥에서 만나 ‘우리 시대의 미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1시간 가량 진행된 대담은 동서고금을 오고 가는 ‘지(知)의 향연’이었다.

 - 두 분이 서울대 미학과 동문(유 교수는 67학번, 진 교수는 82학번)이고 사회활동도 활발한데 이렇게 마주 앉은 게 처음이라니 의외네요.

 유홍준(이하 유)=기회가 없었어요. 진 교수가 SBS에서 아침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때, 문화재청장으로 한번 전화인터뷰를 한 일이 있고,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유세장에서 만난 적이 있죠. 그리고 오늘이 세 번째입니다.

 진중권(이하 진)= 유 교수님의 답사기를 읽으며 ‘이런 방향의 접근도 가능하구나’ 감탄했어요. 책에 등장하는 여러 소재들을 언젠가 서양미학의 관점으로 해석해 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 두 분 다 젊은 나이에 스타 저술가가 됐는데.

 유=내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잡지에 연재할 때가 30대였는데, 진 교수는 그보다 더 어린 20대 후반에 『미학 오디세이』를 쓰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나이가 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 나이가 됐으니 보다 수준 높은 걸 해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죠.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곰브리치 세계사』를 쓴 게 스물 일곱살 때고,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도 박사학위 논문이었죠. 필생의 역작이 20대에 시작되는 것이죠.

 진=미학과를 들어갔지만 미학 공부는 거의 안 했어요. 제대 후 대학원에서 미학이란 학문을 처음 접한 것이나 마찬가진데, 모르던 걸 알게 되니 재미있어 죽겠는 거예요. 그 즐거움이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에 그대로 담겨 있어요. 지금 쓰면 이렇게 못 쓸 겁니다.

 - 미학이란 게 아직도 대중들에게는 생소한데.

 유=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가 미학이 무엇이냐라는 거예요(웃음). 영어로 미학이 에스테틱스(Aesthetics)인데, 18세기 독일 라이프니츠 볼프학파의 바움가르텐이 “여태까지의 논리라는 것은 이성에 의한 논리에 국한돼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삶 속에는 감성이 있지 않은가. 감성에도 논리가 필요하다 ”라고 선언한 것이 시작이죠. 사실 모든 철학자의 마지막 지향점은 미학입니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도 그렇고, 헤겔도 루카치도 말년에 미학에 관한 저작을 썼지만 완성하지 못했죠.

 진=미학이란 ‘미와 예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죠. 철학은 결국 ‘진선미’를 추구하는 학문인데 진(眞)은 존재론이나 인식론으로, 선(善)은 윤리학으로 나타나고, 마지막 미(美)를 다루는 게 미학입니다.

 - 아름다움의 인식에 동서양 차이가 있을까요.

 유=차이가 있죠. 근대적 학문체계로서의 미학은 18세기에 유럽에서 출발했지만, 동양도 나름대로 미학적 사고의 전통이 길어요. 이를 테면 4세기 중국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이 『고화품록(古畵品錄)』에서 그림을 평가하는 기준에 6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가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말합니다.

 진=지금 ‘기운생동’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게 영어로는 번역이 잘 안돼요. 해 봐야 ‘스피리철 에너지(Spiritual energy)’라고 할까요. 서양화에서는 붓질이 잘못되면 덧그릴 수 있지만 동양화에서는 붓 하나가 힘 있게 딱 지나가면 끝이죠.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니 미감도 다르게 나타나죠.

 - 하지만 미학은 서양의 학문이라는 인식이 있죠.

 유=일본 같은 경우는 하나를 받아들이면 일본화시켜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개념화하고 그 바탕 하에 새로운 것을 생산해요. 반면 우리는 달항아리도 있고 진경산수(眞景山水)도 있는데 이를 이론화하는 작업을 안 했어요.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규정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해왔기 때문에 틀거리를 벗어나 다양성을 갖는 미학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봐요.

 진=저는 동양과 서양의 미학이 다른 점이 있지만 서로 융합될 거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한국 전통 건축에 ‘그랭이법’(인공석과 자연석을 나란히 쌓을 때 자연석의 굴곡에 맞춰 인공석을 깎아내는 방법)이라는 게 있는데, 인공을 자연에 맞춘다는 이런 개념이 서양의 생태주의 미학 등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 미학을 미래를 전망한다면.

 진=21세기의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에스테티쿠스(미학적 인간)’로 변해갈 거라 생각해요. 경제도 이제까지의 기술 패러다임에서 예술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는 중이고, 스티브 잡스의 사례처럼 창의성과 상상력이 중요해지죠. 마르크스가 ‘미학이 미래의 윤리학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미학은 미래의 경제학이 될 것이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치 부문에서 본다면 한국사회는 아직 과도하게 도덕적이죠. 좌우대립 이념대립, 미학적으로 참 보기 싫거든요.

 유=창조하는 1등이 되려면 기술만 갖고는 부족한 점이 많아요. 호기심·감성 등 미학이 지닌 가치가 중요한 시대가 되어가는 것이죠. 그래서 미학을 논리나 학문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학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면 단선적이 아닌 복합적 이해가 가능하고, 거기서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진행=배영대 문화부장, 정리=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홍준 1949년생. 81년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명작순례』 등을 썼다. 문화재청장을 거쳐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정년퇴임하고 올해부터 석좌교수로 일한다.

●진중권 1963년생. 서울대,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저서 『미학오디세이』 『앙겔루스 노부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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