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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택시기사 "월급 56만원 올랐지만 사납금 73만원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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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5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택시들이 승객을 태우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택시요금을 인상하며 기사 처우를 개선해 승차거부를 근절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납금이 오르며 택시서비스 개선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승식 기자]

3년째 법인택시를 몰고 있는 윤모씨는 지난해 10월 택시요금이 인상된 후 생활이 더 팍팍해졌다. 요금 인상으로 손님은 줄었는데 회사에 내는 사납금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회사는 월급과 연료비 지원 등으로 56만원 올리면서 월 사납금은 72만8000원 인상했다. 윤씨는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요즘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일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요금 인상 전이 나았던 것 같다”며 “승차 거부 등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28년 경력의 베테랑 택시기사 최모씨는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했지만 8만9000원을 벌었다”며 “사납금 13만6000원을 채우기 위해서 3시간 동안 5만원을 더 벌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창형(28)씨는 지난 주말 강남에 갔다 택시를 잡기 위해 30분 넘게 강남역 주변을 맴돌아야 했다. 승차거부를 몇 차례 당한 끝에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이씨는 “요금이 올랐는데도 택시 서비스는 별 변화가 없다”며 “친절까지 기대하지 않으니 승차거부만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기본요금 600원 인상 등 택시요금을 올리면서 기사들의 처우와 승객에 대한 서비스를 함께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기사들의 수입이 좋아지면 승차거부, 난폭운전 등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기사들과 승객들 모두 예전보다 오히려 나빠졌다는 반응이다.

 요금 인상으로 늘어난 수입 중 대부분이 택시기사 처우 개선에 사용되지 않고 사납금을 통해 업주들에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발표한 처우개선안에는 택시기사의 월급을 23만원 이상 올리고, 연료비 지원도 하루 25L에서 35L로 늘리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택시기사들의 월평균 수익은 187만원에서 211만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서울시에 노사 임단협 결과를 제출한 택시업체 137곳 중 15곳이 사납금을 서울시 가이드라인인 2만5000원 이상 올렸다. 택시노조 관계자는 “서울시 제재가 무서워 사납금을 올리고도 신고를 안 한 업체가 많은 걸로 안다” 고 말했다.

 사납금이 2만8000원 오르면 운전기사들은 한 달에 72만8000원 정도를 더 부담해야 한다. 월급 인상, 연료비 보조 등으로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몫(54만6000원)보다 18만원이 더 많다. 부족분을 운행수익으로 채워야 하지만 요금 인상으로 손님이 줄어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결국 기사들은 사납금을 채우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장거리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승차거부, 난폭운전 등을 일삼는 것이다. 택시기사 홍모(57)씨는 “인상된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자기 돈을 쓰는 택시기사들도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돈 안 되는 단거리 손님들을 태우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임단협을 체결한 업체들의 협정서를 받아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사납금을 2만5000원 이상 올린 업체에 대해선 카드결제 보조금 지원 중단 등 제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납금을 2만5000원 이상 올린 업체 15곳 중 사납금을 다시 내린 곳은 2곳에 불과하다. 서울시 김규룡 택시물류과장은 “업체 입장에서 카드 수수료를 지원받는 것보다 사납금을 기준보다 5000원 더 받는 게 훨씬 이득이기 때문에 서울시 제재가 잘 먹히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업체들도 불만이 많다.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택시기사들에게 임금을 올려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회사마다 사정이 다른데 일괄적으로 임금 인상폭, 사납금 인상액 등을 정해놓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택시노조 관계자는 "요금인상분을 일부 택시업주들이 가져가고 있다”며 "서울시가 보다 강력한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전액관리제(월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민주택시노조 김성한 사무처장은 “사납금제를 폐지하고 전액관리제를 도입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액관리제는 당일 수입 전체를 회사에 납부하고 급여를 받는 것이다. 서울시 택시물류과 관계자는 “월급제를 도입하고자 해도 일부 기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사납금을 내고 남는 돈은 세금을 안 내도 되므로 기사들이 좀처럼 양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안효성·고석승·이진우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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