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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8) 요르단 마다바에 있는 킹스 아카데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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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르단 킹스 아카데미의 졸업식 모습. 설립자인 국왕 압둘라 2세가 졸업식 때마다 찾아 연설 한다.

강남통신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남편(신봉길·외교부 동북아협력대사)이 요르단 대사로 발령 받아 2007년 요르단 수도 암만으로 가게 됐다. 남편을 따라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중동은 처음이라 혹시 치안이 위험한 건 아닌지, 사람들이 과격하지 않은지 걱정이 많았다. 막상 생활해보니 한국만큼 안전했다. 요르단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고 이스라엘과는 평화협정을 체결한 나라다. 또 국왕(후세인 압둘라2세)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어 다른 아랍권 국가와 달리 정치 분쟁도 거의 없고 온건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다.

2 킹스 아카데미 캠퍼스 전경. 요르단에선 한국 초여름 날씨가 연중 이어져 항상 맑고 따뜻하다.

 킹스 아카데미(요르단 마다바 소재·이하 킹스)에 대해 알게 된 건 요르단으로 온 이듬해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서였다. ‘새로운 중동의 도전’이라는 제목 아래 압둘라 2세가 자신의 모교인 미국 디어필드 고등학교의 시스템을 따와 요르단에 기숙학교를 세웠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또 킹스 졸업생이 배출되면 중동의 미래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에 대한 분석까지 자세하게 다뤘다.

3 아랍 전통 의상 디스다셰를 입고 있는 신주호군(가운데).

 남편이 이 기사를 읽더니 답사 차원에서 학교 탐방을 가자고 했다. 마침 주말이라 막내아들 주호(미 프린스턴대1·당시 13세)도 따라 나섰다. 요르단에서는 물론 나라를 옮겨다닐 때마다 줄곧 미국식 국제학교에 다니던 주호는 학교 캠퍼스를 본 순간 “정말 멋지다”며 반해버렸다. 암만 남쪽에 위치한 마다바 지역의 붉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킹스 캠퍼스는 푸른 나무로 덮여있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을 꼭 닮은 아름다운 건물들은 내 눈에도 장관이었다. 자유분방한 미국식 학교와 달리 전교생이 교복을 차려입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고 운동하는 모습은 더 인상적이었다. 이런 점이 맘에 들었는지 주호는 답사를 다녀온 날부터 계속 “킹스에 보내달라”고 졸라댔다.

 아이 눈에는 킹스가 멋지게만 보였을지 모르지만 엄마인 내 눈에는 미심쩍은 것도 많았다. 미국과 유럽 아이들이 여럿인 미국 학교와 달리 킹스에는 온통 아랍 학생뿐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은커녕 아시아 학생조차 단 한명도 없었다. 아랍어를 잘 못하는 주호가 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제 막 개교한 실험적인 학교에 아이를 맡겨도 될지 혼란스러웠다. 당시 주호가 “반드시 킹스에 가고 싶다”고 강력하게 요구하지 않았다면 절대 전학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4 웨이터 역할을 맡은 학생(오른쪽)이 요리사에게 음식을 받아 점심 서빙을 준비하고 있다.

5 학교 휴게실. 남녀 학생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소다.

6 이 학교 학생들이 요르단 사막에서 트레킹 하는 모습.

 막상 학교에 들어간 후 주호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아랍인과 한국인이 꼭 닮은 점이 하나 있는데 낯선 사람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는 거다. 주호가 킹스의 첫번째 아시아인으로 입학했으니, 아랍 학생이 보기에 얼마나 낯선 존재였겠나. 수업이 끝나면 아랍 아이들끼리 우르르 나가버리고 주호에겐 말도 잘 걸지 않으니 처음에는 ‘따돌리는 건가’ 싶어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달 남짓 지나 서먹함이 사라지자 함께 운동하며 어울려다니는 사이가 됐다. 이처럼 처음에 친해지긴 어렵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가족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것도 한국 사람과 닮은 점이다.

 적응이 빨랐던 건 주호가 사교성이 좋고 운동을 잘했기 때문이기도 있지만, 점심시간 덕이 컸다. 킹스의 점심시간은 매우 색다르다. 전교생이 식당에 모여 흰색 테이블보를 씌운 원탁에 예닐곱명씩 둘러 앉아 웨이터 서빙을 받으며 격식을 갖춰 식사를 한다. 학생들은 모두 지정석에 앉아야 하고, 원탁 테이블마다 교사가 한명씩 섞여있다. 지정석은 2주 단위로 바뀌고 서빙을 맡은 웨이터 역할도 학생들이 번갈아 가며 맡는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포크·나이프 사용법부터 식사 시간의 대화 매너까지 가르쳐준다. 낯선 학생과도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다보면 어느새 친해진다. 대다수 국제학교가 뷔페식 카페테리아를 운영하며 자율적으로 음식을 가져다 먹게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같은 점심시간에도 킹스의 철학이 담겨있다. 킹스가 요르단 왕이 세운 학교인 데다 아랍 부호들이 투자한 곳이다보니, 다니는 학생도 쿠웨이트 왕자, 카타르 총리 딸, 아랍뱅크 회장 아들과 같은 소위 귀족들이다. 주호와 같은 학년에도 요르단 왕세자가 다니고 있었다. 여기에 요르단 국왕이 사비로 장학금을 만들어 시리아나 팔레스타인 난민도 함께 학교를 다닌다. 점심시간이 되면 쿠웨이트 왕자와 팔레스타인 난민이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요르단 왕세자가 서빙해주는 음식을 먹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식사시간도 “모든 학생은 평등하다”는 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인 셈이다.

7 킹스 아카데미 학생들은 미국 디어필드 고등학교와 같은 교복을 입는다.

8 대부분의 수업은 토론식이다.

9 졸업식에서 연설을 하는 국왕 압둘라 2세.

10 졸업식 전날,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부터 신주호군, 아버지 신봉길 대사, 어머니 황미숙씨.

 주호는 이 점심시간에 자신의 멘토를 만나기도 했다. 하버드대 출신인 일본인 교사 류지 야마구치다. 그가 멘토가 된 계기가 있다. 주호가 입학한 첫해에 전과목 A를 받았다. 그날 점심시간에 기분이 좋은 나머지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같은 테이블에 있던 교사 류지에게 “라이벌에게 성적표를 자랑하고 싶으니 먼저 일어나도 되겠냐”고 물었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다. 주호에게 “당장 앉으라”고 말한 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라면 굳이 킹스에 다닐 필요가 없다. 다른 학교를 알아보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류지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주호가 저녁시간에 그의 방으로 찾아가자 그제서야 따뜻하게 맞아주며 “너는 킹스에 들어온 첫번째 아시아 학생”이라며 “단순히 성적을 잘 받는 것보다 네가 이 학교에 뭘 남길지 고민해보라”고 조언해줬다고 한다. 주호는 류지의 이야기를 듣고 학교에 다니는 자세가 바뀌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대표해서 학교를 위해, 중동을 위해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얘기했다.

 류지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도와준 적도 많다. 주호가 “킹스에서만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게 뭘까”에 대해 묻자 “사막에서 3주 동안 지내며 너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얘기하고, 자신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주호와 사막에서 함께 머물렀다고 한다. 요르단 사막에 사는 베드윈족의 천막에 머물며 류지와 많은 대화를 했던 주호는 이때의 경험을 프린스턴대에 지원할 때 자기소개서 내용으로 적기도 했다.

 요르단의 사막은 한국 사람들이 상상하는 메마른 열사의 땅이 아니다. 비옥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붉고 아름다운 모래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것처럼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한다. 주호는 “요르단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인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킹스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 또 있었다. 주호는 킹스에 다니면서 국왕 전용기를 두번이나 탔다. 국왕은 자신이 세운 킹스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어 한달에 한두번은 헬기를 타고 학교를 찾아온다. 기숙사에서 주호가 왕세자 바로 옆방을 썼는데, 왕세자를 만나러 온 국왕과 딱 마주쳤다. 유쾌한 성격의 국왕은 주호에게 악수를 청하며 “내가 10시간 뒤 서울에 가는데 같이 가자”고 제안해 엉겹결에 따라나선 적도 있다. 또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개최됐을 때도 국왕과 동행할 기회를 줬다. 국왕과 함께 청와대에 가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요르단 국왕은 주호뿐 아니라, 해외 순방길에 이렇게 킹스 학생들을 꼭 데려간다. 귀족 아이들보다는 팔레스타인이나 시리아 난민처럼 국왕의 장학금을 받는 학생을 우선적으로 선발해 전용기를 함께 타고 다닌다. 해외에서 국왕이 공식 업무를 볼 때 동행하기도 하고, 대사관에서 관광을 시켜주기도 한다. 킹스가 배출한 학생들이 중동의 리더로 자라나길 바라는 국왕의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킹스가 제공하는 것은 이런 신기한 경험 뿐만이 아니다. 학업 성과도 뛰어나다. 하버드·예일·브라운대 등 미국 명문 대학 출신 교사들이 킹스 캠퍼스 안에서 생활하며 학생 지도에 열정을 쏟고 있다. 대다수 교사들이 중동에 처음 생긴 국제학교라는 킹스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해 근무를 자처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약속도 없이 교사의 숙소를 찾아가 노크를 하면 모두들 “저녁 식사를 너무 많이 만들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와줘서 정말 고맙다”며 “얼른 들어와서 같이 먹자”며 반겨준다고 한다. 함께 식사를 하며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이해가 안된다고 하면 몇번이고 “다른 방법으로 설명해볼게”라며 열의를 보인다.

 킹스 캠퍼스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랍 학생과 미국 교사의 토론 모습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중동 지역의 기본 정서는 미국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가 충돌할 때마다 킹스에서는 뜨거운 토론이 벌어진다. 중동 국가들끼리도 민족·종교·신분·성별간 갈등이 심해 시리아 귀족과 요르단 평민 학생이 부딪치고, 쿠웨이트 학생이 미국 교사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교사가 수업 시간에 대립과 분쟁, 갈등이라는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다툼이 아닌 토론으로 이끌고 가는 모습은 정말 신기할 정도다. 어떤 민감한 주제가 나와도 포용하고 인정하면서 모든 학생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식이다.

 주호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한 일이 있었다. 주호는 수업 시간에 쿵쿵 하는 폭발음을 들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출신 친구도 같은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이날도 모두가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킹스에서 경험한 특별한 추억은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학교를 졸업하고도 요르단 왕실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주고, 국왕이 미국에 방문할 때면 주호에게 미리 연락을 해 만남을 갖기도 한다. 미국이나 영국의 유명 보딩스쿨에 보냈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일들이다.

 주호가 다닐 때까지만 해도 킹스에 아시아 학생들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킹스 졸업생의 뛰어난 진학 실적 등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한국 학생만 20~30명 정도고, 중국 학생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낯섦을 극복하고 도전한다면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학교다.

신주호 군 엄마 황미숙(53·서울 한남동)
정리=박형수 기자

특징

교칙: 남녀 학생은 손을 잡을 수 없다. 손을 잡은 게 발견되면 ‘경고’를 받는다. 경고 3회면 ‘교장 면담’, 면담 3회면 ‘정학’을 받는다. 정학 2번이면 ‘퇴학’이다. 또 남학생이 여학생 기숙사 근처에서 발견되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라마단: 굉장히 큰 행사로 치러진다. 라마단을 지키는 학생은 새벽 4시에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해가 질 때까지 금식 한다. 학교 기숙사에서는 이들을 위해 저녁에 음식을 많이 내준다. 라마단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은 평소와 같이 생활하면 된다.

수업 방식
전과목 영어로 강의. 아랍어와 종교는 필수 과목이다. 무슬림은 '이슬람교'를, 기독교인은 '크리스트교',종교가 없는 이들은 '세계 종교학'을 듣는다.

요르단 킹스 아카데미 홍보 영상

QR코드를 찍으면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보려면 joongang.co.kr/gangnam

요르단의 교육

요르단은 중동에서 석유가 나지 않는 유일한 나라다. 부족한 자원 대신 외교와 관광, 교육을 통해 국가 기반을 다지고 있다. 전 국민의 92%가 이슬람교도인 이 나라에서 모스크(이슬람 예배당) 다음으로 많은 건물이 학교다. 전국적으로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1990년대 이후 여섯살이 되면 영어교육을 시작하고 있다. 초1 때부터 모국어인 아랍어와 영어를 함께 배운다. 요르단 관광청에 따르면 국민의 90%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영어 교육에 집중하는 이유는 관광 산업 육성 때문이다. 석유도 나지 않고 농업용지도 부족한 요르단에선 관광 산업이 전체 산업의 50%를 차지한다.

미래 책임질 차세대 리더 키우려 요르단 국왕이 세운 보딩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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