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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안심 귀가 서비스, 강력 범죄 많은 강남구는 왜 안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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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10시 30분 종로구 명륜동의 스카우트(귀가 도우미)들이 이 지역에 사는 한 여성을 집까지 바래다 주고 있다. 이 여성 집은 주택 밀집지역 안에 미로처럼 나 있는 골목길을 오르내린 끝에 도착했다. [김경록 기자]

지난 9일 오후 11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밤 늦은 시각이라 학교 안엔 인적이 드물었다. 올 2월 졸업 예정인 여학생 조모(25)씨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누군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30분이 지난 후 가방을 싸 밖으로 나왔다.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고생이네. 오래 기다리진 않았죠.” 노란 조끼 차림에 경광봉을 든 중년 여성 두 명이 조씨에게 다가왔다. 이들은 15분을 함께 걸어 조씨를 학교 인근 원룸 앞까지 바래다줬다.

 “번번이 감사해요.” 조씨에게 인사를 받은 여성들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자리를 떠났다.

이들은 서울시가 지난해 6월부터 시범 운영 중인 ‘안심 귀가 서비스’ 도우미들이다. 일명 ‘스카우트’로 불린다. 조씨처럼 늦은 밤에 혼자 밤길을 걸어 귀가 하는 여성을 무료로 동행해준다. 조씨는 이 서비스를 알기 전엔 매일 밤 도서관에서 나와 으슥한 골목길을 홀로 걸었다. 불안한 마음에 외투 주머니에 호신용 스프레이를 넣어 다니기도 했다. 조씨는 “취업 공부 때문에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있을 때가 많은데 이젠 귀갓길 걱정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 서비스는 서울시 다산콜센터(120)에서 신청을 받는다. 조씨 같은 단골 이용자는 전담 스카우트에게 직접 요청하기도 한다. 만날 장소를 30분 전에만 알려주면 된다. 동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월∼금요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 사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6개월(6~11월) 간 모두 2만5648명(중복 이용자 포함)이 이 서비스를 받았다. 하루 평균 209명이다.

스카우트는 모두 495명으로 이중 70%가 여성이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두 명이 한 조로 다닌다. 서비스 이용자로부터 돈을 받지 않고 대신 서울시로부터 활동비(시간당 5500원)를 받는다. 동행 요청이 없을 때엔 범죄 위험 지역을 순찰한다. 혼자 귀가 중인 여성을 거리에서 만나면 즉석에서 귀가 동행을 제안하기도 한다.

종로구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하는 이면실(47·여)씨는 “같은 여성의 안전을 챙겨주면서 수입도 올릴 수 있어 좋다”면서 “스카우트 중엔 자녀를 둔 40~50대 주부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이 사업의 효과가 크다고 보고 있다. 최복렬 서울시 여성일자리팀장은 “여성들의 ‘나홀로’ 귀가를 도우면서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어 스카우트와 수혜자 모두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사업이 서울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종로·성동·성북·강북·도봉·은평·서대문·마포·영등포·동작·관악·강동구 12개 구에서만 이뤄진다. 왜 그렇게 됐을까. 서울시는 지난해 시범 운영 예산으로 27억원을 책정했다. 예산 제약 때문에 모든 구에서 실시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서울시는 지난해 봄 “서비스를 받겠다”고 신청한 21개 자치구 중 15곳만 선정했다. 선정된 자치구 중 중구는 지난해 11월 말 시범 운영 연장을 신청하지 않았고 강서·광진구는 지난해 12월 말까지만 운영을 연장했다.

강남·서초·송파구는 아예 처음부터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들 3개구가 모두 여타 지역보다 안전해서일까. 서울대 김경민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교수가 2005~2011년 7년간 5대 강력범죄 건수로 자치구별 안전도 순위를 냈다. 강남구는 13위로 ‘위험’ 등급을 받았다. 서초구가 3위로 ‘매우 안전’, 송파구는 8위로 ‘안전’ 등급이었다.

시범 운영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강남구 보육지원과는 “이미 강남·수서경찰서에서 유사한 서비스를 시행 중인 데다 서울시 사업이 현재로선 내용·정책이 바뀔 수 있는 시범 운영 단계여서 향후에 이용자에게 혼선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송파구는 “시범 운영 중엔 부작용 등 문제가 생길까 봐”, 서초구 관계자는 “우리 구 자체적으로 귀가 도우미 운영을 검토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3월 말 시범 운영 종료를 앞두고 다음달 자치구로부터 정식 운영 참여 신청을 받는다. 이번엔 별도 선정 없이 희망하는 모든 구에서 서비스를 정식 운영하기로 했다. 강남·서초·송파구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서비스를 신청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 구의 여성들도 오는 4월부턴 이 서비스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글=조한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 ‘핫스팟(hot spot) 지수’는 한 지역의 범죄 위험도를 뜻하며 지수가 클수록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5대 강력 범죄(폭행·살인·강도·절도·성범죄) 중 한 범죄 유형의 발생건수가 1년간 일정 기준을 넘으면 핫 스팟으로 지정돼 지수 1을 부여한다. 5대 범죄에 한해 한 지역의 7년 간 핫스팟 지수를 계산하면 적게는 0, 많게는 35가 나온다. 35가 나왔다면 7년 연속해 5개 범죄 유형 모두에서 범죄 위험도가 높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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