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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가장 적게 마름질해 조화 꾀하는 지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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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08면

주합루 2층 누마루에서 내려다본 부용지 주변 풍광은 비원 제일경이다. 낮게 드리운 하늘빛과 어우러진 야산, 그 위로 풀어진 산책로가 산을 옥대처럼 휘감았다. 조용철 기자

여름날, 담양 소쇄원 뜰을 거닐어본 적이 있는가. 부용대에서 바라본 안동 하회마을 풍광, 병산서원의 만대루에서 완상하는 7폭 자연병풍은 철 따라 옷을 바꿔 입는 자연과 주거공간의 경계를 잊게 한다. 발길이 진천 세곡천의 농다리 28칸에 이르면 지상은 이내 천상으로 변한다. 밤하늘 별자리들이 쉬어가는 오두막, 28수(宿)를 건너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냇물은 은하수가 흐르는 하늘이다. 생활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상향으로 이끄는 이 근원적인 힘은 어디서 올까.

연중기획 한국문화 대탐사 ② 한국인의 공간 미학

7할이 산지로 이뤄진 금수강산(錦繡江山).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이 산천을 한국인들은 빌려 쓰듯 유지해 왔다.

“지형에 맞게 적절히 마름질해 이용하는 ‘인지제의(因地制宜)’가 한국의 공간구성 철학입니다. 주거공간은 그것이 촌락이건 도시건 민가나 사원, 혹은 궁궐이건 자연의 침입자일 수밖에 없어요. 한국의 전통건축 공간은 가장 적게 침입해 조화를 꾀하는 것이죠. 중국의 공간구성 철학 역시 자연에 근본을 두지만 자연보다 낫게 하려는 고우자연(高于自然), 일본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려는 작정(作庭) 철학을 지녔다고 하겠습니다.”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가 간단히 정리했다.

“한국의 경우 대칭성을 지향하는 궁궐이나 서원에서조차 비대칭성을 꾀하는 경우가 많아요. 불규칙적인 지세를 포용적으로 취하는 거죠.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지대는 공간을 X축과 Y축으로 설정하고 균형을 잡는 데 주력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산악지대는 굳이 그렇게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었지요. 지형을 자연스럽게 이용해 공간 구성을 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비대칭적인 경우가 많아요. 이는 자연 지세에 순응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매우 자연스럽지요. 이곳 창덕궁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문화국토연구센터장 채미옥 박사의 발길은 비원 입구 오르막길을 내딛고 있었다. 일행은 어느덧 겨울 숲 속에 폭 파묻히고 말았다. 옷을 벗은 떡갈나무와 느티나무, 회화나무, 느릅나무가 맘껏 가지를 뻗었다. 인공적으로 전지(剪枝)하거나 분재하지 않아 보는 이의 마음이 여유롭고 넉넉해진다. 인구 1000만 명이 사는 서울 도심에 이처럼 빼어난 원림(園林)이 있음은 분명 축복이다. 모퉁이를 돌아가자 이내 부용지(芙蓉池)와 주합루(宙合樓)가 시야에 들어왔다.

원형과 딴판으로 졸속 복원해 놓은 서울 종로구 청진동의 물길(왼쪽). 드높은 건물 아래 6m 지층엔 600년간 쌓여 온 ‘시간의 켜’가 묻혀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하에 묻힌 의금부 뒷길.

전통 건축은 자연 지세에 순응해와
한국을 대표하는 정원의 승경(勝景) 앞에 섰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났다는 고대 동양적 우주관이 반영된 부용지 한가운데 작고 둥근 섬이 있다. 섬 안의 등 굽은 소나무 잎들이 유난히 새파랗다.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심신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이곳이 수양지이자 학업의 수련장이기도 했음을 실감한다.

기와지붕이 연꽃을 닮은 부용정(芙蓉亭)의 두 기둥은 연못 속에 서 있다. 권 교수가 중학생 때 사생대회를 했던 곳을 가리킨다. 부용정 앞뜰에서 연못 북쪽으로 높이 보이는 주합루의 기왓장을 세가며 정밀하게 그렸단다. 미술교사였던 서예가 동강 조수호(예술원 회원) 선생이 “넌 응용미술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소년은 그 꿈을 키워갔고 세계 75개국 680여 도시를 건축기행하면서 공공디자인을 구상했다. 꿈을 만들고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는 성스럽다. 빼어난 공간이 주는 선물이다.

영화당(暎花堂)을 지난다. 들어열개문을 올려 걸쇠에 매달아놔서 건너편과 뻥 뚫렸다. 투명해서 막힘이 없다. 영화당 현판 글씨는 영조의 어필이다. 앞마당 춘당대는 과거시험을 보던 곳이다. 건물은 필요에 따라 개폐가 자유롭다. 실내를 자연과 터놓게 하기도 하고 차단하기도 하는 것이다. 집 밖의 경치를 자연스럽게 불러들이는 차경(借景)의 멋스러움이다.

중국 원림은 수목과 화훼를 심고 가산(假山)을 축조한다. 평지에 물길을 끌어들이고 호수를 만들어 압도하는 자연을 연출한다. 소주(蘇州)의 졸정원(拙政園), 북경의 이화원(頤和園)이 다 그렇다. 반면 일본 정원은 아기자기한 울타리 안에 선(禪)의 고요함과 정갈함을 연출한다. 교토(京都)의 료안지(龍安寺)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은 섬세하다 못해 수학적이기까지 하다.

왕과 신하를 물과 물고기로 비유한 어수문(魚水門)을 지난다. 부용지의 물고기가 현명한 물을 만나 어룡(魚龍)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인재 등용문의 상징이다. 문 좌우로는 신우대를 심어 취병(翠屛)이라는 울타리를 조성했다. 살짝 경계만 짓는 친환경 담이다. 돌계단을 올라 뒤쪽으로 돌아서 주합루에 올랐다. 우주와 합치하는 누각이라는 뜻의 주합루 현판 글씨는 정조의 어필이다. 1층은 왕실의 도서를 보관하는 규장각(奎章閣)이고 2층은 열람실이다. 이 열람실이 주합루인데 건물 전체를 주합루라고 부르기도 한다. 열람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를 연 정조는 1777년 이 건물을 세우고 당대의 인재들과 함께 정진했다. 학문과 예술의 전당이었던 셈이다. 정약용·박제가·유득공·이덕무의 숨결이 느껴진다.

높은 주합루 마루에서 바라보는 부용지 일대의 조망은 비원 제일경이다. 시원하고 산뜻하다. 낮게 드리운 하늘빛과 어우러진 야산, 그 위로 풀어진 산책로가 산을 옥대처럼 휘감았다. 포근하지만 흐르지 않고 베일 것 같은 맑음을 지닌 풍광이다. 이곳이 큰 공부터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 공간 미학은 풍수사상과 유교·불교·도교의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의 구현에서 비롯된다. 풍수는 좋은 땅의 기운을 받아 복을 꾀하려 한 동양의 지리학이다. 주거지를 정할 때,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두는 배산임수(背山臨水) 형국이 대표적이다. 풍수를 비롯한 전통사상에서는 풍토나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찾는다. 대체로 물이 귀한 중국은 물을 중시하고 물이 풍부한 한국과 일본은 산을 중시한다.

2000년 서울 역사 큰 문화 경쟁력
오늘날 도시를 세울 때, 생태적 토지 이용계획은 필수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천 년이 넘은 옛날에도 지표는 물론 지하의 토양 흐름까지 고려해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건설했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땅속의 생기를 받고자 했을 만큼 풍수에 집착했던 선조들은 집터나 묘터 모두 경관을 중시했다. 그런데 근대화 이후에는 땅의 경제적 활용가치에만 매달리는 경향성을 보인다. 그래서 많은 문화유적이 경제논리에 밀려 사라졌다.

“서울·경주·부여·공주·익산 등 옛 도시가 많은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역사적 실체가 땅 밑에 있어요. 지상에 남아 있는 유적만 가지고 도시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찾는다거나 문화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채미옥 박사는 서울 풍납동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2000년 전의 한성백제 궁궐터 유적이 나왔으나 제대로 보전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강화도 도로 건설부지에서 나온 고려궁궐 건물터, 서울 종묘 주변이나 종로 청진동지구 도시환경정비 사업부지 유적발굴조사에서 600년 전의 도시 조직이 드러났지만 역시 살려내지 못했다. 청진동지구 6m가량의 지층에 쌓여온 ‘600년 시간의 켜’는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한다. 멕시코 3대문화 광장으로 일컫는 마야시대 신전, 스페인 성당, 현대건물이나 로마 유적에 필적하는 세계적인 관광자원이라는 것. 그런데 국내에선 사유지라는 이유로, 혹은 개발연대에 만들어졌던 제도로 인해 쉽게 지워져버리기 예사다. 드높은 건물들 밑으로 역사도시가 짓뭉개져 있는 형국이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발굴 유적을 살려서 얼마든지 효용가치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있다.

고층건물도 애물단지인 발굴 유적을 살려서 얼마든지 효용가치 높게 세울 수 있다. 건물들마다 고고학박물관(Onsite museum)을 품고 있다면 시애틀의 ‘언더그라운드 투어(지하에 묻힌 옛 시애틀 여행)’보다 더 좋은 문화관광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브랜드다. 세계적으로 2000년의 도읍지 역사를 지닌 수도는 로마·아테네·다마스쿠스·베이징·예루살렘과 서울밖에 없다고 한다. 서울이 그만큼 문화관광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기억의 장소’는 공공재다. 공동체의 구심점이기도 하다. 기억이 없는 공간, 기억이 없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개발시대의 논리에 갇혀 매몰되거나 잠든 오래된 도시의 기억을 살려내야 한다.

우리의 옛 도시들이 대대적인 공간구조 변화를 겪게 된 것은 일제 때다. 철로가 놓이고 신작로가 뚫리면서 유장한 산맥이 잘려 나가고 의미 깊은 공간들이 깨졌다. 창덕궁과 종묘는 본래 한 공간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지금의 율곡로를 내서 맥을 잘라 놓았다. 서울시는 곧 터널을 만들어 에코브리지 형태로 공간의 원형을 복원할 계획이다.

“대한민국의 산업디자인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디자인이나 도시디자인은 미흡해요. 우리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사람의 통일, 국토의 통일을 넘어 공간의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허리 잘린 산맥을 연결하고 남북으로 나눠진 하늘과 땅, 바다를 합쳐 통일한국과 세계를 디자인해야 합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후원합니다.

『나의 국가디자인전략』의 저자이기도 한 권영걸 교수가 힘주어 말했다.

문화는 풍토를 어머니로, 시간을 아버지로 해서 낳은 자식이라고 한다. 따라서 시대가 변하면 문화현상도 변하기 마련이다. 전통적인 공간 미학을 무시한 채 난개발을 자행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아름다운 국토의 이용가치와 보전가치를 높여서 문화국토를 만들어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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