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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 문화권 누리는 원년 시공 넘어 문화대장정 나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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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호 01면

첨성대는 시간의 등대다. 그 등대 앞에서 분청사기의 거장 윤광조(69) 선생과 바이올린 영재 박지언(11) 어린이가 만났다. 두 예술인은 1400년 전 선덕여왕이 세운 첨성대 앞에서 나이 차를 잊고 평생 친구가 되기로 언약했다. 조용철 기자

해 돋는 동쪽나라 사람들은 일찍부터 하늘을 섬겨 왔다. 경주 계림숲 너머 첨성대는 하늘을 관찰하고 섬겼던 이 땅 사람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천문대는 시간의 등대다. 언뜻 도자기를 떠올리게 하는 고색창연한 원통형 천문대 위, 정(井)자형 장대석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재는 틀이었으리라.

2014년은 한국문화 대탐사의 해

바람이 분다. 마른 금빛 잔디 벌에 겨울바람이 분다. 몸을 움츠리고 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바람이 잠깐 숨죽인 사이, 경쾌한 집시풍의 바이올린 음향이 울려퍼진다.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이다. 빠르고 긴박감 넘치는 선율! 불꽃 튀는 기교. 꼬마 연주자 박지언(11ㆍ서울 목동초 3)이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껏 재량을 뽐내자 햇살이 환하게 웃는다. 금빛 잔디밭이 샛노랗게 빛난다.

“저 끼, 저 강단과 절대음감! 너무 놀랍고 애틋해. 저 어린 것이 이 추운 겨울바람 속에서 당차게 연주하는 것 좀 봐. 저 끼가 바로 한국인의 예술혼이야.”

지언이를 처음 만난 분청사기의 거장 윤광조(69)는 감격한다. 1994년부터 경주시 안강읍 바람골에 터 잡고 사는 그는 시간의 강을 건너온 바람의 넋 같은 예인이다. 선객(禪客)의 풍모는 곧 그의 내면세계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어언 200년 동안 분청이 사라졌다. 그것을 회생시킨 이가 바로 윤광조다.” 201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도록의 기록이다. 도자기 왕국으로 자부하는 한국에서 국민 그릇으로 쓰이던 분청(粉靑)이 200년간이나 사라졌었다니.

2012년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주요 20개국(G20)을 포함한 50개국 가운데 한국의 ‘현대문화 지수’는 9위, ‘전통문화 지수’는 29위였다. 자기 나라의 전통 가치와 문화유산에서 동력을 찾지 못하고 화려한 무지개만 좇는다고 문화강국이 되는 게 아니다.

그림 그리기에 앞서 깨끗한 바탕을 갖추라는 회사후소(繪事後素). 본질 연후에 꾸밈이 있다. 부실한 바탕에 화려한 꾸밈은 도리어 추태로 남기 쉽다. 숭례문 졸속 복원의 교훈이다.

유형, 무형의 전통문화 유산 속 한국인의 시간은 하늘의 별처럼, 혹은 자격루의 물처럼 느리게 순환한다. 그러다 근대화로 발 빠른 서구문화의 추격자가 되면서부터 ‘빨리빨리’ 해치워버리는 속도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압축성장은 했지만 행복지수는 OECD의 바닥권이다.

분청사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직수굿이 시간에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고 거장은 말한다. 흙판으로 그릇 모양을 만들고 한 달가량 비닐 장막을 친 그늘에 둔다. 때로는 석 달을 말렸다 글자를 새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표면처리는 순간적으로 이뤄진다. 개칠(改漆)이 안 되기 때문에 물찬 제비 같은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 긴 기다림과 재빠른 솜씨가 조화를 이룰 때 명작이 나온다. 기다림과 재빠름의 조화, 과거와 현대의 조화. 이 시리즈가 추구하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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