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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휴대전화 감청 쉽게" … 서상기법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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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회 정보위원장인 새누리당 서상기(사진) 의원이 3일 국정원의 휴대전화 감청을 쉽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서 의원이 이날 국회에 제출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통신사가 국고 지원을 받아 감청 협조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통신사에는 최고 20억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재 ‘통신사는 통신제한조치(감청 등을 의미) 집행을 위해 협조해야 한다’고 돼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의 ‘협조의무’ 조항에 ‘통신제한조치 집행에 필요한 장비·시설·기술 및 기능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을 넣자는 거다. 서 의원은 “유·무선 통신 중 사용 빈도가 75% 이상인 휴대전화 감청은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현재의 감청제도를 바꿔 첨단통신을 악용하는 강력범죄와 간첩· 테러를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권은 과거 광범위한 휴대전화 불법도청 사실이 적발된 뒤 감청 장비를 폐기해 국정원의 활동에 제약이 많다는 걸 강조하며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도 “국정원이 합법적으로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보관(IO)의 기관 상시 출입 폐지 등의 개혁 조치에 따라 국정원의 정보수집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국익을 위한 목적과 국민의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전형적인 경우로,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입법을 서둘러서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 국민을 상대로 언제든지 감시할 수 있는 기술적인 길을 열어주는 조치라는 이유에서다. 국정원 개혁특위 민주당 간사인 문병호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은 과거 불법 도·감청을 한 선례가 있고, 우리 국민은 이를 대단히 민감하게 생각하고 두려워한다”며 “불법에 대한 확실한 방지대책이 전제되지 않는 한 더 이상 논의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설비 의무화로 국정원의 휴대전화 감청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5년 당시 법무부는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해 통신사의 ‘감청 협조 의무’를 신설하려 했다. 이때 법무부는 시행령으로 통신사의 감청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려 했지만 YMCA 등 시민단체가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크다”며 반발해 무산됐다. 2007년 17대 국회에선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본회의에 회부했지만, 시민단체들의 반대와 대선 일정 등이 겹치면서 처리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률안 15건이 논의됐지만 여야 이견이 커 불발됐다.

 해외의 경우 많은 국가가 통신사의 감청설비 설치를 의무화했다는 게 서 의원의 주장이다. 미국은 1994년 발효된 통신감청지원법에 따라 의무화했고, 이를 어길 시 하루에 최고 1만 달러의 제재금을 부과한다고 한다. 민주당은 ‘한국적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주당 법률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은 “9·11테러 이후 감청을 적극적으로 허용한 미국의 경우 테러방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민주적 통제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 없는 한국에서 저런 법을 만들면 상시적이고 전방위적인 사찰망이 만들어지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권호·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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