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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의대 문·이과 교차지원,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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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서울대가 2015학년도부터 의대·치대·수의대에 대해 문·이과 교차지원을 허용하기로 했던 방침을 무기한 유예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학문 간 융합과 창조적 인재 양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 “교육현장의 혼란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현대 의료 현장엔 융합 인재가 필요하다

정천기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학교실
주임교수

최근 서울대에서 문과생의 의대 진학을 허용하기로 했다가 다양한 지적과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시행을 유예한 바 있다. 문·이과 교차지원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의료라는 것이 결국 아픈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과학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더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의료인을 양성할 수 있는 길이란 주장이다.

 반면 교차지원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현실적인 측면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의대에서는 이과 학생들만 지원할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준비할 기간도 없이 2015학년도부터 문과생의 지원을 받는다면 의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현재의 이과 학생들에게는 불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입시 현장의 혼란을 우려하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논의의 전개를 보면서 결국 제도 변경에 있어 사회적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의료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의료라는 것이 매우 과학적이고 기술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 있는 의료인들, 특히 나처럼 위중한 환자들을 매일 봐야 하는 신경외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런 논의를 보게 된다. 의료가 결국 사람이 내리는 선택에 달린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과학기술적인 측면보다 사람들 간의 문제에 더 가깝다는 목소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는 과학기술의 결과물을 가지고, 사람들끼리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되는 사회적 결정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한정된 자원을 가장 슬기롭게 사용하고, 나아가 분배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인 것이다. 다양한 첨단 의학기술들이 나오고 있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의료인의 자질은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제한된 시간 안에 적절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정보도 제한된 것이고, 시간도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은 아니라고 해도 그중 ‘괜찮은 선택’을 할 수 있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료는 다양한 의학기술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측면에서 인문학적 소양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현대 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융·복합적인 인재가 활약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의료 분야인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앞으로 의대가 양성해야 하는 인재는 전통적인 과학기술인이 아니다.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사회적 의식과 균형 감각, 판단 능력을 갖춘 융합 인재다. 의대 교육 프로그램도 그러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고, 장기적으론 고교 교육 차원에서 문·이과 분리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 점에서 서울대가 추진해온 문·이과 교차지원은 의학분야의 인재 선발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도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의료는 사회의 공감대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명확하다. 향후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의대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교육하게 되면 사회가 요구하는 수요를 더욱 충실하게 만족시키게 될 것이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정천기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학교실 주임교수

수험생 혼란과 눈치작전 심화시킨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서울대의 문·이과 교차지원 허용방침이 철회됐지만 이 문제는 융·복합 인재 양성과 관련해 고민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철회 배경은 너무 급작스럽게 결정되었다는 점과 외고에 유리하고 이과나 일반고에는 다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는 만약 시간 여유를 두고 예고하거나 외고생에게 특별히 유리하지 않도록 설계하면 문제가 없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동반한다. 그렇게 해서 융·복합 인재 양성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교차지원은 융·복합 인재 양성과 별 상관이 없고, 기회주의적 입시 풍토만 조장할 뿐이다. 융·복합 인재 양성은 교차지원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고교 교육과정의 변화와 새로운 입학전형 방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서울대의 교차지원 허용이 수험생들에게 주는 신호는 무엇인가? 그것은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문과나 이과 중에 어디로 가는 게 유리한 것인지를 계산하라는 것이다. 의대를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이과를 지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생물·화학 등의 자연과학 교과를 기본으로 하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문과 계통을 지망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점수 계산 때문일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외고를 나와 의대로 가는 경로를 밟는 것이 융합형 인재 양성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결국 현 체제하의 교차지원 방식은 융·복합 인재 양성의 취지와는 무관하게 수험생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방정식만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교육부는 향후 2021학년도 문·이과 통합형 수능을 추진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대 입시제도가 다른 대학과 고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교차지원 방식은 보다 더 큰 그림하에서 고려돼야 한다.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자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모집단위별 전형요소를 특성화하는 것이다. 의대의 경우 화학·생물·윤리 같은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는 식이다. 전공별 특성에 필요한 과목을 지정함으로써 현행 수학을 위주로 한 문·이과 구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즉 의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 수학B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면 수학B를 공부하지 않은 학생에게도 의학 쪽 진로를 열어 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장벽을 제거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전공에 맞는 교과를 통해 융·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고교 차원의 융·복합 교육과정 운영을 전제로 이를 입시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융·복합 교육과정은 주로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아프리카 학생을 돕기 위한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응용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고교에서 심화선택과목 수업을 통해 프로젝트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대학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틀이 갖춰진다면 고교의 교육과정 개혁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는 수험생의 혼란과 눈치작전을 불러오는 문·이과 교차지원 방식을 취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고교 교육과정에서 실질적인 융합형 교육과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모집단위별 전형요소를 특성화하는 한편 융·복합 프로젝트형 입학전형을 도입하기 바란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