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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옷보다 팔리는 옷"… IQ 147 패션 수재의 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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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남 목포에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상경했다. 2007년 고교 졸업 후 서울의 한 사립대 의상학과로 진학했다. 언젠가는 꿈이 이뤄지리라 자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취업 시장은 얼어붙어 있었다. 대기업 인턴 자리도 기웃거렸고, 백수라면 불이익을 받을까 졸업도 미뤘다. 그의 자취방 한쪽엔 자격증 수험서가 자리 잡았다.

 지난해 12월 28일 방영된 JTBC 패션 디자이너 선발 서바이벌 프로그램 ‘탑디자이너’ 결선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깜짝 스타가 된 이창섭(26·경희대 의상학과 4학년·사진)씨. 이씨는 “암담하던 지난해를 생각하면 갑작스러운 수상에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그에겐 우승 상금 1억원과 1년간 동대문 쇼핑몰 두산타워에서 가게를 차릴 기회가 주어졌다.

 이씨는 처음부터 눈에 띄는 대회 참가자는 아니었다. 해외 유학파도 아니었고, 내로라할 입상 경력도 없었다. 경쟁자 중엔 연예인들의 옷을 디자인하는 프로 디자이너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양말에 포인트를 주거나 옷 뒷부분을 주름으로 돋보이게 하는 등의 기법으로 주목 받았다. 심사위원 최범석 디자이너는 그의 작품에 대해 “컬렉션과 색감을 푸는 방식이 굉장히 계산적이다”라고 평했다. 무채색 위주의 디자인인데도 적재적소에 색감을 살린다는 의미다.

 특히 그는 실용적인 옷을 디자인하고,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이 있으며, 창업형 인재를 원한 프로그램 취지와 맞아떨어졌다. 대학에서 학회장을 맡았고, 군복무 때는 부대 소품을 직접 제작했다. 옷감 구매 비용을 제한하고, 작품 가격을 스스로 매기는 방식이 여느 패션 디자이너 프로그램과는 달랐다. 디자인이 독특하다 해도 대중이 외면하는 작품을 만든 참가자들은 탈락했다. 반면 이씨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독특해 보이지만 입기 어려운 옷을 제작하는 참가자들에게는 “다들 수고해. 나는 팔리는 옷을 만들 테니까”라며 여유를 보였다. 심사위원들까지 그의 옷을 사겠다고 나섰다.

 이씨는 목포 문태고에서 전교 1, 2등을 다툰 수재였다. 방송에서도 “지능지수 147에 왼손잡이, AB형이라 우승에 자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군인 출신 아버지는 약대와 사범대에 진학하라고 했지만 끼를 주체할 수 없던 그는 디자이너의 길을 택했다.

 “직접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욕구가 강했어요. 백화점 한 개 없는 목포의 지역 환경도 한몫했습니다. 쉽게 옷을 구할 수 있었다면 이 길을 포기했을 거예요.”

 그는 올해 8월 자신의 브랜드 ‘바이바이섭(bi_by seob)’을 내건 점포를 동대문 지역에 내기로 했다. 점포 맞은편 옛 동대문야구장 자리에는 올해 3월 컨벤션센터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문을 연다. 여기서는 1년 내내 세계적인 패션쇼와 신제품 출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그는 동대문 상권이 살아나면 자신의 옷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될 거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5년 안에 국내 최고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그리고 런던과 파리로 진출해 세계인이 좋아할 만한 브랜드를 만들어야죠.”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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