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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발렌시아가 이끈 그들, 명품산업 새 틀 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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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컵스(왼쪽)와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시선·표정이 닮은 듯 보이지만 감성·취향은 꽤 다른 두 사람이다. [사진 루이비통]

제이컵스냐 게스키에르냐.

 요즘 세계 명품업계의 최대 관심사다. 마크 제이컵스(Marc Jacobs·51)와 니콜라스 게스키에르(Nicolas Ghesquiere·43), 스타 패션 디자이너 두 명의 맞대결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2월 말~3월 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프랑스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이하 LV)’의 여성복 패션쇼 무대가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21세기 지구촌 명품 트렌드를 쥐락펴락해 왔다. 지난해 10월 LV 창조부문 책임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가 제이컵스에서 게스키에르로 교체되며 대단한 화제가 됐다.

 알려진 대로 제이컵스는 LV 브랜드 최초의 대표 디자이너다. 지난 16년 동안 LV를 이끈 ‘별 중의 별’이었다. LV는 세계 최대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간판 브랜드로, 2012년 기준 280억 유로(약 40조3000억원)에 이르는 LVMH의 연 매출 절반 이상이 LV에서 나온다. 그런 제이컵스의 뒤를 이을 게스키에르의 LV 신고식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일단 제이컵스가 선공에 나선다. 2월 초 미국 뉴욕에서 ‘마크 제이콥스’(이하 MJ) 패션쇼를 연다. MJ는 1986년 제이컵스가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브랜드다. 그가 LV를 졸업한 뒤에 처음 선보이는 무대다. 그만의 역량을 모두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이컵스는 그간 LV·MJ 패션쇼를 병행해왔다. 그리고 약 2주 후 게스키에르의 LV 데뷔 무대가 펼쳐진다.

가방 디자인에 현대미술가 참여시켜

1 제이컵스가 작가 스티븐 스프라우스 작품을 소재로 만든 ‘루이비통 모노그램 그래피티 키폴’. 2 ‘루이비통 모노그램 벚꽃무늬’는 작가 무라카미다카시와 함께 작업한 것이다. 3 게스키에르의 ‘발렌시아가 아레나’. ‘모터백’이란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 루이비통, 발렌시아가]

 두 스타들이 이번에 어떤 면모를 보여줄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행사 직전까지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는 패션계 관행 때문이다. 사실 쇼 직전에 모든 작품이 수정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두 사람의 자존심이 걸린 무대이기에 더욱 그렇다.

 제이컵스와 게스키에르는 닮은 듯 다른 디자이너다. 프랑스 대표 브랜드 LV를 미국인 패션 디자이너 제이컵스가 이끌었다가 다시 프랑스인이 맡은 점이 흥미롭다. 게스키에르가 LVMH의 최대 경쟁자 케어링(Kering)그룹에서 일했던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스페인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1895~1972)가 세운 브랜드 ‘발렌시아가’의 창조 부문 책임자로 일했다. 케어링 그룹은 발렌시아가를 비롯해 구찌·보테가베네타·알렉산더매퀸·브리오니·생로랑 등을 거느리고 있다. 그간 LVMH와 케어링이 세계 명품 업계를 양분해왔다.

 제이컵스는 1997~2013년, 게스키에르는 1997~2012년 각각 LV와 발렌시아가 디자인을 총괄했다. 이 때문에 이번 대결은 일종의 2라운드에 해당한다. 일단 서로에 대한 둘의 평가는 후한 편이다. 게스키에르는 지난해 11월 LV 영입 직후 패션잡지 보그 영국판에서 “제이컵스를 정말 존경하고 또 존경(a lot of respect and admiration)한다. 그가 LV를 패션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브랜드 최초의 디자이너로 기록될 것이다. 특히 재능 있는 작가를 패션 디자인에 끌어들여 LV의 핵심 자산이 되게 했다”고 극찬했다. 이에 대해 제이컵스는 “게스키에르는 훌륭한 디자이너다. 내가 존경하고 존중하는(I respect and admire) 디자이너가 후임자가 돼 정말로 기쁘다”고 화답했다. 지난해 12월 초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다. 인사치레로도 보이는, 둘 사이 묘한 긴장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고전·여성적인 명품 트렌드 바꿔

 실제로 두 스타 디자이너는 조금씩 잊혀져 가던 브랜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제이컵스는 히트작 LV 가방 시리즈로 브랜드를 널리 알렸다.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리처드 프린스, 스티븐 스프라우스 등 저명 현대미술가들을 가방 디자인에 참여시켜 히트 상품을 만들어냈다. 오래되고 지루해 보이던 LV 가방은 이들 작가와 만나면서 여성들이 선망하는 가방으로 거듭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그를 가장 영향력 있고 재능 있는 현대 미국 패션 디자이너로 평가하기도 했다.

 반면 게스키에르는 특유의 대중적 감성으로 패션의 새 장을 열었다. 로큰롤 가수를 연상케 하는 가죽 재킷, 여성적이라기보다 중성적으로 보이는 자유분방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그가 시도하기 전까지 명품 패션 브랜드에선 고전적이고 여성적인 디자인이 주류를 이뤘다. 게스키에르처럼 거리 패션 분위기를 고급 의류에 적용한 예는 거의 없었다. 패션 잡지 보그 영국판은 “게스키에르가 만든 발렌시아가 옷과 가방을 사려는 사람들이 매일 프랑스 파리 본점으로 밀려들었다. 매장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팔 물건이 남지 않을 정도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제이컵스와 게스키에르가 겨뤄온 지난 20년간 세계 명품업계에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전통 수제 기법, 소규모 제작시설, 가족 경영 등이 특징이었던 몇몇 유럽 브랜드가 경영·마케팅 전문가들 손을 거치며 글로벌 브랜드로 새롭게 태어났다. 여행용구 제작업체로 출발한 LV도 LVMH그룹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65) 회장이 인수해 세계적 브랜드로 키웠다. 아르노 회장은 60여 개 명품 브랜드가 속한 LVMH를 이끌고 있다. 브랜드별 매출이 공개되지 않지만 시장 분석가들은 LV가 그룹 매출액과 이익의 50% 이상을 차지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스타 디자이너의 힘이 컸다. 제이컵스가 떠난다는 소식이 알려진 날, 프랑스 파리 증시에서 LVMH 주식은 2.2% 하락해 시가총액 20억 달러(약 2조원)가 사라질 정도였다. 제이컵스가 세운 MJ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MJ는 현재 전 세계 80여 개국 200여 매장에서 팔리고 있고, 자매 브랜드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의 인기도 좋다. 프랑스 화장품 회사 코티는 MJ 향수를 내고 있으며 지난해 미국에서 MJ 화장품도 출시하는 등 사업을 계속 확장 중이다.

 MJ가 LVMH 그룹 소속 브랜드이긴 하지만 LVMH는 MJ 유통회사 지분만 98% 소유한 상태다. MJ의 상표권·저작권 등 핵심 자산은 LVMH·제이컵스·MJ 최고경영자 로버트 더피(Robert Duffy·58)가 3등분해 갖고 있다. 제이컵스가 LV를 떠난 이상 아르노 회장과 계속 협력 관계로 남을지도 관심사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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