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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난민이 국경 넘어 마구 몰려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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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데이비드 밀리밴드
국제구호위원회(IRC) 위원장
전 영국 외무장관

레바논과 터키에서 시리아 난민 및 구호팀과 사흘을 보내면서 시리아 위기의 종말론적 모습을 확인했다.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 900만 명 이상의 난민,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된 200만 명 이상의 어린이는 물론 소아마비를 비롯한 질병의 만연, 몰려드는 난민을 맞는 이웃 나라들이 그것이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권에 대항하던 반군들은 이젠 서로 싸운다. 그 틈에 지하드(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이 득세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이 분쟁이 몇 개월이 아닌, 몇 년 또는 심지어 수십 년 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구호기관들의 노력에도 현실은 굶주리고 집 잃은 난민은 고사하고 저격수와 마구 날아오는 미사일 앞에 노출된 민간인조차 보호할 수 없다. 서로 교전 중인 파벌들은 국제교전규칙을 무시하며 비전투원도 해치기 일쑤다. 유엔은 250만 명의 민간인이 식량·식수·의약품 부족에 시달리며 접근이 힘든 일부 도시와 마을에 사는 25만 명은 외부지원에서 완전히 단절됐다고 추산한다.

 시리아의 이웃 나라들은 밀려드는 난민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레바논은 100만 명 가까이 받아들여야 할 처지다. 터키 난민캠프는 약 20만 명을 수용했지만 도시나 마을에서 지내는 난민은 그 두 배를 넘는다. 해외 지원은 수시로 중단된다. 약속한 원조액의 60%만 실제 지원되며 일부만 수혜자에게 전달된다. 일부 구호기관이 국경을 넘어 물자를 운송하지만 교전 중인 전선을 통과해 십자포화에 시달리는 주민들에게까지 이를 전달하진 못한다.

 따라서 국제적 외교 노력은 어린이를 위한 소아마비 백신처럼 가장 긴급한 물자를 전달하기 위한 임시휴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네바에서 열리는 평화회담에서 지원 문제를 지엽적 문제로 다뤄선 안 된다. 유엔의 발레리 아모스 긴급구호조정관의 주장처럼 이는 협상의 핵심이 돼야 한다.

 하지만 분쟁이 몇 년간 질질 끌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구호기관들은 장기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월드뱅크가 요르단과 레바논에서 벌이는 것처럼 여기에는 난민들에게 제공할 여러 서비스를 포함해야 한다. 여기에는 창의적 방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구호·개발 기관인 국제구호위원회(IRC)는 세 분야에 초점을 맞춘다.

 첫째, 창의적 교육이다. 시리아 주변국의 기존 교육 시스템은 몰려드는 난민을 받아들일 처지가 아니다. 게다가 난민의 80%가 수용소가 아닌 도시 지역에 살고 있어 캠프 교육은 큰 효과가 없다. 대신 해당 지역과 교사 난민이 네트워크를 이뤄 제공하는 비공식 수업을 공인 교육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 모델은 이미 콩고·아프가니스탄에서 성공을 거뒀다.

 둘째가 기술 개발이다. 시리아인들은 대부분 문자를 해득하며 산술 능력과 기술 능력을 갖췄다. 타와술(아랍어로 연결이라는 뜻)이라는 사회 네트워킹 플랫폼과 비영리 뉴스기관인 인터뉴스를 마련해 난민들이 정보와 조언을 교환함으로써 서로 도울 수 있게 해 준다.

 셋째가 경제활동이다. 시리아 난민들은 시장경제에 익숙하다. 교역을 통해 자립을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난민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캐시 포 워크’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시리아 분쟁의 공포를 줄일 수 있다면 당장 생명을 구하는 긴급구호뿐 아니라 난민들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데 필요한 장기 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의약품의 분쟁지역 반입과 식수와 위생 시설 제공, 분쟁 희생자들이 혹독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들 생존자의 교육과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곰곰 생각해야 할 것이다.

ⓒProject Syndicate

데이비드 밀리밴드 국제구호위원회(IRC) 위원장 전 영국 외무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