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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쥐 스케줄에 맞춰 살며 복막투석 연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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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호 18면

캐리커처=미디어카툰 정태권

어지러웠다. 온몸에서 기가 빠져나가듯 피로가 밀려왔다. 책을 펴도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온몸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에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찼다.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았다.

베스트 닥터 ⑫ 경북대병원 신장내과 김용림 교수

경북대병원 신장내과 김용림 교수는 경북대 의대 본과 2학년 때 이 같은 증세를 겪었다. 그는 탈진한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했다. 병명은 급성 신증후군. 콩팥에서 피를 여과하는 사구체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병이다. 그는 2~3주 입원해 병마와 사투를 벌이면서 환자의 마음을 가슴속에 담았다. 그리고 내과 전공의가 되자 자신의 병을 치유하는 신장내과를 전공으로 삼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김 교수는 신장염 환자의 복막투석 분야에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의사로 성장했다. 그는 2006년부터 70여 나라 1000여 명이 회원인 국제복막투석학회의 집행위원 10여 명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기는 2년이지만 4회 연임할 정도로 학계의 신뢰를 얻고 있다. 2015년 아시아·태평양 복막투석학회를 대구에 유치하고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국제학술지 ‘치료성분 채집투석’의 편집위원이며 의대생과 의사들의 교과서 격인 ‘머크 매뉴얼(Merck Manual)’과 ‘해리슨 내과학’의 복막투석 분야를 집필했다. 김 교수는 또 노벨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미국 UCLA, 영국 카디프대, 중국 베이징대 등과 혈액 및 복막투석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동료 교수들은 “김 교수가 연구와 교육에도 뛰어나지만 환자 진료에서도 누구보다 열정적인 것 같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환자가 오면 간호사에게 먼저 10~15분 문진을 하게 한 뒤 그 내용을 재빨리 읽고 진료를 시작한다. 반드시 환자와 가족의 안부를 묻고 환자의 불편한 점, 통증 등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를 들은 다음 치료경과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고령의 환자들은 아들 친구에게 진료를 받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주말에 학회에 가지 않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빠짐없이 병실을 방문해 환자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김 교수는 1989년 경북대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교수 자리가 나지 않아 울산의 동강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그는 내시경, 심장초음파 등을 보면서 온갖 종류의 내과 환자를 봤고 친절하고 열정적인 진료가 금세 소문이 나 환자가 몰렸다.

김 교수는 “콩팥은 전해질, 수분, 산성도 등을 조절하는 장기여서 신장내과 의사는 만성신장염 환자뿐 아니라 병원 치료 중 몸의 항상성이 깨진 응급환자도 치유해야 한다”면서 “5년 동안 내과의 여러 경험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94년 모교 교수로 임명됐고 96년부터 미주리주립대 병원에 연수를 가 복막투석의 세계적 대가인 칼 놀프 박사 팀에서 투석의 메커니즘을 공부했다. 귀국하자마자 국내 처음으로 쥐를 이용한 복막투석 동물실험실을 열었고 이에 대한 연구를 이끌어왔다. 몇 주 동안 쥐의 투석을 유지한다는 것은 고난도의 작업이다. 실험실을 연지 3, 4년이 지나서야 연구 결과물이 나왔다.

‘쥐의 스케줄에 맞춰 생활하는 의사’는 시나브로 학계에 소문이 났다. 서울대병원 김연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강신욱,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양철우, 고려대 안산병원 차대룡,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김순배 교수 등 ‘학구파’ 교수들과 어울리게 됐다. 2002년 이들은 서로의 연구열정에 반해 함께 공부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이들 소장파 교수는 2008년 10월 말 보건복지부가 우리나라 10대 질환의 연구센터를 모집한다고 공고하자 김용림 교수를 중심으로 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경북대병원에서 닻을 올린 말기신부전 임상연구센터에서는 전국 31개 병원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105편의 논문을 냈다. 이 가운데 89편은 국제 권위의 학술지에 발표됐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기초연구 결과를 임상시험에 잘 접목시키는 ‘중개연구’가 화두인데, 이런 면에서 김 교수는 중개연구에서도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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