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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절친 괴델 "세상이 날 박해" 망상 속 굶어죽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앨런 튜링의 주도로 1943년 독일군 암호 해독을 위해 만들어진 연산 컴퓨터 ‘콜로서스’. 미국의 ‘에니악’보다 2년 먼저 개발됐으나 영국이 1970년대까지 관련 사실을 기밀로 하는 바람에 ‘세계 최초 컴퓨터’란 영광은 에니악에 돌아갔다.

만약 달리 처신했다면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암호해독의 천재이자 컴퓨터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앨런 튜링 말이다.

 “그 청년과 무슨 관계인가.” 계속된 경찰의 질문에도 그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란 입장을 고수했다면. 그 청년이 자신의 지갑에서 10파운드 지폐를 꺼내간 적이 있으니 자신의 집을 턴 도둑일 거란 의심이 강하게 들더라도 구태여 경찰에 그 청년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면. 한때나마 연인 사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당시 법으론 동성애는 범죄 아니었던가.

 이토록 ‘만약’ 타령을 하는 건 앨런 튜링의 허망한 말년 때문이다. 그는 결국 유죄를 인정하고 화학적 거세를 받았다. 동성애를 인정한 탓에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에서도 배제됐다. 동성애자들이 소련에 포섭돼 스파이 활동을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시대였던 까닭이다.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옆엔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있었다. 그의 나이 42세이던 1954년의 일이다.

 컴퓨터 시대가 열리며 그는 추앙받기 시작했다. 애플의 로고가 그의 사과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널리 퍼졌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면 좋겠지만…(God, we wish it were)”이라고 부인했는데도 아랑곳없었다. 점차 수많은 이들이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게 됐다. 2009년 결국 영국 총리가 사과했다. 또 많은 이들이 튜링의 사면을 요구했다. 결국 지난 23일 특별사면이 이뤄졌다. 그의 사후 59년 만의 일이었다.

 사실 튜링은 그런 처지로 생을 마감하기엔 어마어마한 전쟁영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 체계인 ‘에니그마(Enigma·수수께끼)’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역사학자들이 “종전(終戰)을 2년여 앞당겼다”고 평가할 정도다. 그러나 이 작전은 74년까지 기밀이었다. 영국이 독일에서 압수한 에니그마를 고쳐 계속 썼기 때문이다. 그가 41년 쓴 두 편의 논문은 지난해에야 비밀 해제됐다. 그만큼 중요했던 연구였고 중요했던 인물이었다.

2, 3, 5, 7일 아니면 성행위 않는 괴짜도

51년 미국 프린스턴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맨 왼쪽)이 뛰어난 자연과학자에게 주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상’의 첫 수상자인 쿠르트 괴델(오른쪽 둘째)에게 상장을 건네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화학자들의 전쟁이었다면(참호지대에 낮게 깔렸던 독가스를 떠올려보라), 제2차 세계대전은 수학자와 물리학자의 전쟁이었다. 암호 해독과 원자탄 개발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국가 기밀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열전 중엔 보배였지만 냉전 중엔 위험 인물이었다. 기밀 누설을 우려해서다. 앨런 튜링도 당국의 감시에 시달리곤 했다.

 비슷한 연유로 원자탄·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등의 개발에 관여한 존 폰 노이만의 말년도 우울했다. 그는 ‘화성에서 온 외계인’으로 불릴 정도로, 20세기에 가장 똑똑한 수학자로 누구나 인정하는 인물이다. 그가 얼마나 탁월한 사고력의 소유자인지 드러내는 일화다.

 한 파티에서 여주인이 낸 문제다. 두 개의 기차가 한 선로에서 마주 달리는데 정확히 1600m 떨어져 있다. 모두 분당 800m(원래 시속으로 출제된 문제이나 계산 편의를 위해 분속으로 바꿨다)의 속도로 달린다. 한 기차의 정면에서 파리가 다른 기차를 향해 분당 1600m로 날아가 기차에 도착하자마자 방향을 틀어 다시 다른 편 기차로 날아가길 반복한다면 기차가 충돌할 때까지 파리가 왕복한 총 거리는 얼마일까.

 대개들 파리가 이쪽저쪽을 오간 거리를 더하곤 한다. 무한급수 말이다. 여기엔 그러나 요령이 숨어 있으니 두 기차가 800m(800mX2=1600m)를 달려 충돌하니 그때까지 걸린 시간은 1분이고, 파리가 1분 동안 난 거리는 1600m란 식이다.

 폰 노이만은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1600m”라고 답했다. 여주인은 “요령으로 풀었군요. 대부분 수학자들은 무한급수를 사용하느라 몇 분 정도 걸리는데…”라고 놀랐다. 폰 노이만은 정색했다. “무슨 요령? 난 그 문제를 무한급수로 풀었는데.”

 그는 54세에 암으로 숨졌다. 군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그의 병상을 지킨 건 정부 요원들이었다. 행여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라도 기밀을 말할까 걱정해서였다. 이 때문에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았다는 의혹도 있다.

“우리는 모두 약간 정신 나간 사람들”

왼쪽부터 컴퓨터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앨런 튜링, 물리학·경제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발휘한 존 폰 노이만, 집합론의 창시자인 게오르크 칸토어, 게임이론의 대가 존 내시.

 이런 운명이 20세기적 현상은 아니었다. ‘수학의 군주’로 불리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의 수학 노트엔 “이 같은 삶보단 죽는 편이 낫겠다”고 쓰여 있곤 했다. 20여 년간 대규모 측량 사업에 끌려 다니는 등 당시 군주들에게 혹사를 당해서였다. 사실 수학자 중엔 기인(奇人)이 적지 않다. 2, 3, 5 등 소수(素數)가 아닌 날엔 성행위를 하지 않으려 했다가 폭행을 저질러 죄수가 된 에피소드쯤은 흔하다. 개중엔 광인(狂人)도 있다. 수학자 스스로 “우리는 모두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들”(에드문트 란다우)라고 실토할 정도다. “수학을 하게 되면 평균으로 많이 이탈해도 여전히 생존할 수 있다. 수학을 한 사람 중엔 세일즈맨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수학을 할 정도의 통제력은 가지고 있는 것”(존 그레이엄)이라고들 말한다. 수학자이기에 가능한 ‘수학이 제일 쉬웠어요’ 버전인 셈이다.

 범인(凡人)의 입장에선 그러나 수학이 그런 상태로 이끄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게다. 특히나 무한(無限)을 다룬 집합론의 아버지 게오르크 칸토어와, 쿠르트 괴델의 닮은꼴 말년을 보면 그렇다.

 무한은 인간의 직관에 반하는 영역이다. 그저 가장 큰 수는 구골(1 뒤에 0이 100개 있는 수. 구글의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했다는데 철자를 혼동해 googol 대신 google로 했다고 한다. 수학자답다)일 뿐이다. 두 사람은 무한의 영역에 들어갔고 “신의 비밀의 정원에 들어가려고 했다가 목숨을 잃지 않으면 정신을 잃어버렸던 2세기 랍비”처럼 신경쇠약에 걸리곤 했다(『무한의 신비』).

 칸토어는 자신의 연속체가설을 연구할 때마다 우울증을 앓았다. 관련 증명을 놓고도 “나는 그것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믿지 않는다”고 되뇌곤 했다. 잠시 우울증에서 벗어날 때면 중세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진짜 저자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 망상증에 사로잡힌 그는 결국 여러 달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해서 숨졌다.

 수학에서도 결코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다는 걸 증명한 괴델도 칸토어처럼 무한의 빛에 이끌렸다. 또 칸토어처럼 미쳐갔다. 그는 칸토어와 달리 동료와 무난한 관계였는데도 그랬다. 그는 특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친했다.

 “내가 연구소에 오는 건 단지 괴델과 함께 집으로 걸어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말하곤 했던 아인슈타인이 하루는 지인에게 괴델에 대한 ‘뒷담화’를 했다. “너 아냐. 괴델이 진짜로 완전히 미쳐버렸나 봐.” “아니, 도대체 그가 저지를 수 있는 더 큰 잘못이 아직도 남아 있단 말이냐.” “그가 아이젠하워에게 투표했어.”

 괴델은 점차 사람들이 자신을 박해한다고 믿었다. 잠시 정신이 온전해질 때면 중세철학자 라이프니츠의 이론이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고 증명하려고 했다. 그도 결국 아사(餓死)했는데 1m68㎝였던 그가 숨질 당시 몸무게가 29.5㎏였다.

 칸토어나 괴델은 그나마 수학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아예 이탈한 경우가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인 존 내시다. 게임이론의 대가인 그는 창조력이 절정에 이른 30대에 정신분열증을 앓게 됐고 20여 년 만에 깨어났다.

 때론 개인적 불운을 이겨내지 못한 수학자도 있다. 1920년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이 그렇다. 인도의 최고 계급인 브라만 출신이었지만 가난했던 그는 사실상 수학을 독학했다. 영국의 한 수학자가 그의 기괴한 공식이 적힌 노트를 보곤 처음에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가 다시 꺼내 보곤 “미치광이 아니면 위대한 수학자의 연구”라고 여겨 그를 영국으로 불러들였다. 추운 날씨 속에서 연구하던 라마누잔은 3년 만에 앓아누웠다. 결핵일 가능성이 컸지만 그는 채식을 고집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인도로 돌아갔으나 곧 숨졌다. 그를 진찰한 의사의 일기장엔 “고부(姑婦) 간의 불화가 없었다면 그의 병은 분명 나았을 것”이라고 적혔다고 한다.

 이 같은 천재 수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본 한 수학자 출신 수필가는 이런 소회를 적었다. “영광이 빛나면 빛날수록 그 밑바닥엔 깊은 고독과 좌절로 가득했다. 그들은 보통 사람의 수십 배에 달하는 진폭을 가진 황량한 삶을 헤치고 살아간 용기 있는 자들이다.”

 정작 한 천재 수학자는 자신의 묘비명이 이렇길 바랐다. “마침내 나는 더 이상 어리석어지지 않는다.”

고정애 기자

◆에니그마(Enigma)=독일어로 ‘수수께끼’라는 뜻을 가진 암호 기계. 타자기처럼 생긴 이 기계의 자판을 치면 복잡하고 난해한 형태로 구멍이 뚫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에니그마를 이용해 평이한 문장을 이해할 수 없는 글자 배열로 바꾸는 방식으로 암호를 생성했다. 하지만 영국의 수학자인 앨런 튜링은 1939년 설계한 초고속 계산기 더 봄브(The Bombe)로 에니그마의 암호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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