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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서 건진 우주 홈런 … '로켓 외길' 조광래 나로호 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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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올해 과학계는 1월 말 나로호의 성공적인 발사로 흥분과 환희 속에 한 해를 시작했다. 조광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위원(전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이 주역을 맡았다. ‘투명 뇌’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정광훈 미 MIT대 조교수, 한국호랑이·고래의 지놈 지도를 분석한 박종화 테라젠바이오연구소장의 연구도 화제가 됐다. 의학계에선 연명의료 중단 합의를 이끌어 낸 이윤성(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주목을 받았다.

조광래 전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은 나로호 발사 성공 1주년을 기념해 최근 회고록을 탈고했다. 그는 요즘 한국형 발사체를 개발 중인 후배 연구원들을 돕는 ‘코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

 연초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에 성공한 뒤 조광래(54) 나로호발사추진단장(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두 번의 발사 실패에 이은 두 번의 발사 연기. 오랜 기다림 끝에 거둔 멋진 ‘역전승’이었다.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그였지만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조 단장은 “1차 발사를 잘했으면 국민의 관심도 식지 않았을 것이고 발사체 개발이 좀 더 동력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에 수천억원을 퍼주고 뭘 배운 거냐”는 비아냥에 피멍이 들었던 가슴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그는 ‘한국 로켓 개발사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항우연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 시절 처음 로켓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한국형 과학로켓(KSR) 시리즈 개발을 주도했다. 그런 그에게 나로호의 잇따른 실패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큰 시련이었다.

 하지만 조 단장은 그 시련을 ‘정면 돌파’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신경안정제를 먹으며 버텼다. 연구원들이 동요할 때마다 “나로호를 피해가면 인생의 패잔병이 된다”며 독려했다. “국민 세금을 쓰는 책임이 참 무겁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나로호는 2전3기에 성공했고, 그는 미래 과학기술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됐다. 조 단장은 “발사 성공 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처음 중·고생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 생각보다 학생들이 관심도 많고 아는 것도 많더라. 정말 ‘나로호 키즈’가 생긴 건가 싶어 반가웠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나로호 사업 뒷정리를 하고 있다. 러시아 연구진이 가져왔던 설비·장비를 정리해 돌려보내고, 계약 관련 서류도 챙긴다. 한국형 발사체개발사업단 후배들의 자문에 응하는 ‘코치’ 역할도 한다.

 여전히 신경안정제를 먹지만 이전보다 병원에 가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는 “나로호가 실패했을 때 (몸을) 짓누르던 것이 지금은 사라졌다. (의사가) 천천히 완치돼 가는 과정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최근에는 나로호 발사 1주년을 기념해 책으로 묶어 볼까 싶어 써 온 회고록을 탈고했다. 그간 써 온 연구일지를 바탕으로 러시아와의 협상, 국회 비준 뒷얘기 등을 담다 보니 분량이 A4용지 100장을 넘겼단다.

 “로켓 개발의 기록인 동시에 개인의 역사다. 마무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시작했는데, 막상 다 써놓고 보니 꼭 연구보고서 같더라. 하긴 평생 보고서만 쓰며 살았으니….” 평생 ‘로켓 외길’을 걸어온 과학자는 그렇게 멋쩍게 웃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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