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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몰락할 즈음 돌아온 오극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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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달 14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 과학자·기술자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왼쪽부터 박봉주 총리, 곽범기 부총리, 한광복 당 과학교육부장, 최태복 당 비서, 김정은,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화살표), 노두철·김용진 부총리. [사진 노동신문]

오극렬이 돌아왔다. 한때 ‘좌(左)성택, 우(右)극렬’이라 불리던 평양 권력의 실세였다. 그가 장성택 숙청과 함께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10년 9월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뒤 찬밥 신세였던 오극렬(83·국방위 부위원장)이 공개석상에 비중 있는 위치로 등장한 건 지난달 14일 평양에서 열린 ‘전국 과학자·기술자 대회’에서였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참석한 자리에 그는 박봉주 총리와 최태복 노동당 비서에 이어 서열 3위로 호칭됐다. 이날 군부에서는 유일하게 오극렬만 참석했다. 군 관련 행사도 아닌 곳에 이례적으로 군을 대표하는 형식으로 나타나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엔 ‘장성택’에 초점이 맞춰져 그의 재부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서도 오극렬은 공개활동 행보는 이어졌다. 그는 김국태 국가검열위원장의 사망 때 장례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당국은 그가 장례식에도 참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 17일 열린 김정일 사망 2주기 추모행사에도 다른 군 실세들과 함께 참석했다.

 그의 등장은 시기적으로 미묘하다. 반당·종파와 국가전복음모 혐의로 전격 처형된 장성택이 막 몰락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23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장성택은 11월 중순 구금됐다”고 밝혔다. 정보 당국도 장성택의 김정은 공개활동 수행 횟수가 뚝 떨어지던 와중에 이뤄진 오극렬의 등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옛 소련 프룬제군사대학 출신인 오극렬은 중장(별 둘, 우리 군의 소장에 해당)이던 37세에 공군사령관에 오를 정도로 군부에서 잘나가던 인물이다. 1979년에는 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에 올랐다. 그가 출세길을 달린 건 든든한 집안 내력이 큰 몫을 했다. 아버지인 오중성은 일제시대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원이었고, 5촌 당숙은 전투 중 김일성을 죽음에서 구했다는 오중흡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혁명 2세인 셈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다시 빨치산 원로세력을 부각하고 나선 상황에서 오극렬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극렬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자리를 굳혀가던 88년 2월 총참모장에서 해임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군 내부의 노동당 조직 개편 문제를 놓고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충돌하면서 완패했다.

 그가 다시 주목받은 건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2009년 2월이다. 국가정보원은 이 시점부터 오극렬과 장성택의 이권 다툼이 본격화한 것으로 본다. 당국 내부자료에 따르면 군부를 기반으로 달러벌이를 해온 오극렬은 국방위 진입 5개월 만에 조선국제상회란 전담기구를 만들어 최고인민회의 추인까지 받았다. 이에 자극받은 장성택은 이듬해 1월 조선대풍그룹을 출범시키고 중국 조선족 출신 사업가 박철수를 총재에 임명하는 등 견제에 나섰다. 장성택은 대풍그룹 활동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명령이란 점을 관영 매체를 통해 보도하도록 했다.

 2010년 9월 김정은이 후계자로 추대된 노동당 3차 대표자회에서 장성택이 후견인으로 꼽히면서 오극렬은 세력이 꺾였다.

 그랬던 오극렬이 최근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평양 로열패밀리 등 고위층 2세 모임인 ‘봉화조’와 관련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들 오세원(42)이 봉화조의 리더라는 게 한·미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이 봉화조에서 김정은과 친형 정철도 활동했다.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아들 김철과 강석주 부총리의 아들 강태승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미 워싱턴타임스는 2010년 5월 “봉화조가 초정밀 100달러 위폐인 ‘수퍼노트’의 유통과 마약 거래 등 국제적인 불법행위에 관여하고 있다”며 “오극렬의 아들 오세원이 봉화조를 이끌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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