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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말' 쓰는 사람들 슬픈 성탄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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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구상에서 예수의 복음만큼 많은 언어로 번역된 내용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2000여 년 전 예수가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언어, 아람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시리아 서남부의 말룰라 마을 주민들이다. 하지만 예수가 살던 시대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남달랐던 이들에게 이번 성탄절은 잃어버린 가족과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아픈 날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2년9개월 동안 시리아를 피로 물들인 내전 때문이다.

 시리아 인구에서 기독교인 비중은 5~10% 수준이다. 70~80%는 무슬림 수니파이고 10% 정도가 무슬림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다. 이 때문에 말룰라는 종교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지역이기도 했다.

 시아파인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 아래서 기독교인들은 상대적인 우대를 받았다. 하지만 내전 발생 뒤 수니파 시민군이 세력을 확장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기독교인들은 곧바로 중립을 선언했지만 수니파는 이들을 독재정권에 빌붙어 이권을 챙겨온 친정부 세력으로 분류하고 공격했다.

 AFP통신은 24일 시민군과 연계한 이슬람 극단 무장세력에게 쫓겨 다마스쿠스 대피소에서 성탄절을 준비하고 있는 말룰라 주민 5000여 명의 삶을 조명했다. 피란을 온 말룰라 주민 흐네이네 탈라브는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성탄 선물은 바로 말룰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내 형제는 개종을 강요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리스 정교회 대주교 그레고리오 라함 3세는 “ 내전으로 숨진 12만6000명 중 1200명이 기독교인이고, 45만 명 이 집을 잃었다”고 말했다. 미 잡지 내셔널 리뷰는 “중동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와도 같은 탄압을 받고 있다” 고 우려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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