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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구리, 참혹한 수(97)를 당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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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본선 16강전>
○·구리 9단 ●·안성준 5단

제9보(90~97)=바둑은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수읽기 싸움이 시작되면 바둑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집니다. 흑▲의 차단이 강력해서 백이 살아날 길은 일단 90 밖에 없습니다. 한데 이 장면에서 등장한 91이 심금을 울리는군요. 흑은 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참고도1’ 백1로 받으면 흑2가 있습니다. 흑4 때 A로 두면 밑을 기어 넘어갈 수는 있지만 처음 백△로 들여다볼 때의 큰 뜻은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요.

 구리는 92로 나가 94로 끊습니다. ‘참고도1’이 안 되는 그림이라면 이게 유일한 대안이겠지요. 지옥 같은 코스임을 뻔히 알면서도 앉아서 사느니 서서 죽는 길을 택합니다. 하지만 구리도 차마 그 다음 수를 두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군요. 92, 94의 의미는 중앙 흑을 잡겠다는 거지요. 백은 5수고 중앙 흑은 4수니까 수상전은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96을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고도2’ 백1로 받는 것은 흑2를 당해 백도 4수. 한 수라도 늦추면 안 되니까 3으로 바짝 조여야 하는데 흑4로 두기만 해도 다음이 없군요.

 결국 97이 떨어집니다. 프로들은 이런 수를 볼 때 ‘참혹함’을 느낍니다. 꽃밭이 짓밟히는 느낌보다는 내장이 뚫리는 느낌이어서 자기 바둑이 아닌데도 격렬한 통증을 느끼곤 합니다. 이런 돌파를 당하면 집의 손실은 둘째고 후유증이 엄청납니다. B의 약점도 드러나고 중앙도 맛이 나쁘군요. 안성준 5단의 파워에 천하의 구리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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