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역할

중앙일보

입력 1973.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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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27일의 세계 연극의 날을 맞아 새삼 창조적 파괴력으로서의 연극의 역할에 대한 유식이 고조되고 있다.
연극은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천시된 예술이었다.
연극에 대한 천대는 이른바「연극적인 것」의 본질 속에 무언지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가는 부합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연극적인 것의 본질-그것은 우선 무엇보다도 먼저『대화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대화는 연극을 연극으로서 성립시키는 최소한의 기본요건이다. 연극의 탄생을 위해서『처음에 말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연극을 천시한 한국의 전통 사회는 바로 이 같은 대화의 정신에 큰 평가를 주지 않은 사회였다. 말은 함부로 지껄이기보다 삼가는 편이 미덕이라고 교화 되어왔고 도대체 언론이란 그 존재 이유를 승인 받지 못하였다.
대화의 정신에 바탕을 둔 연극은 그의 발전을 대화의 정신에 바탕을 둔 정치체제의 발전에 힘입고 있다 해서 결코 과언이 아니다. 「소포클레스」나「아리스토파네스」를 낳은 고전 희랍의 도시 국가가 그러했고「셰익스피어」를 낳은 영국의 의회주의가 또한 그렇다. 그건 다 같이 대화의 정신에 바탕을 둔 정치체제요, 그러한 정치체제를 우리는 민주주의라 부르고 있다.
연극적인 것의 또 하나 다른 본질은 갈등과 분규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리거나 숨기지 않고, 밝게 비쳐(조명) 사람들 눈앞에 보여준다(공연)는 점에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 있어서나 인간사회엔 이해의 갈등과 의견의 분규가 없을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 있어선 인간 사회는 그 자체의 본질에 있어『연극적인 것』을 안고 있다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이 같은 이해나 의견의 갈등과 분규를 그냥 억눌러 버리고 덜어 두느냐, 아니면 그것을 들춰내고 적절한 절차에 따라 타협·조정하느냐 하는데 따라 갈림길이 생긴다고 할 것이다. 전자를 권위주의적·전체주의적 통치라 부르고 후자의 경우를 민주주의적 정치라고 부른다. 인간 사회의 갈등과 분규를 들춰내서 보여주는 연극이란 이점에 있어서도 다시 그의 발전이 민주주의의 정치과정과 관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연극이 아직 땅속에 깊은 뿌리를 박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의 뿌리가 아직 깊지 못하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육성해야하는 것처럼 한국의 연극 예술도 육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극예술을 육성한다 할 때 그의 제1차적 책임은 물론 연극인들 자신에게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TV「미디어」의 발달과 보급으로 연극의 많은「잠재적 관객」이 안방에 묶여있는 현실에 있어 따로이 연극 고유의 관객을 개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인 도전 앞에서 연극 예술을 키우기 위해서는 연극인은 관객이 무대에 찾아오기를 안일하게 기다려선 안 된다. 무대 자체가 관객 앞으로 찾아가는 노력도 있어야될 것이다. 서울의 젊은 무대인들이 형무소를 찾아, 혹은 시골장터를 찾아 이동 무대 운동을 일으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예는 그 고무적인 범례라 할 것이다.
그러나 연극이란 원래「인력 집약적」예술이요 그렇기에, 돈이 많이 드는『비싼 예술』 이다. 연극 예술의 개화를 위해서는 공공 단체 혹은 대기업의 재정적 후원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재정적 후원은 다른 예술 일반에 대한 경우와 마찬가지로『작품을 사준다』는 데에 역점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새로이 발족을 본 예술진 전원이 이점 깊은 연구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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