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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과거를 끼고 산 2013년은 안녕하지 못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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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2013년은 안녕했는가’. 내 자리로 배달된 신년 다이어리를 보며 이젠 올 한 해를 되돌아보고 신년을 계획할 때가 되었음을 느낀다. 올해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길게 기억해볼 필요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도 2013년의 익숙한 광경들은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이틀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신축회관 준공식. 이 최첨단 빌딩 앞엔 1979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회관 건축을 축하하기 위해 써준 친필휘호 ‘創造(창조), 協同(협동), 繁榮(번영)’이 새겨진 커다란 기념석이 자리를 잡았다. 당시 11월 회관준공 기념식에 참석하기로 했던 박 대통령이 10월 26일 서거하면서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번 준공식엔 딸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다. 그리고 건성건성 잊혀졌던 70년대의 휘호는 30여년 만에 새로 지어진 회관 앞에서 부활했다.

 대학가 담벼락에 빼곡히 붙은 손글씨 대자보 행렬. 한 고대생의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된 대자보 릴레이는 대학가·고등학교·해외로까지 확산 중이다. 30년 전 내 대학시절의 광경처럼 대자보엔 열정과 분노는 넘치나 팩트는 불안정하고, 논리는 비약되고, 주장은 장황하다. 이는 어쩌면 20살 대학생들의 지성과 사색의 발달단계가 그 즈음이거나 대학교육이 여전히 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에 불온한 이념의 딱지를 붙이는 우리 기득권층 사회도 딱 그 수준에 머물러 있고. 80년대, 그 시절에서 우린 몇 걸음이나 앞으로 온 것일까.

 ‘응답하라, 1994’. 지금 이 시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아날로그 정서 가득한 이 드라마는 솔직히 내겐 별로 재미없다. 옛날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류라고나 할까. 이미 다 알고 있는 옛 사건과 사람들이 뒤섞여 나오니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별 감흥이 없는 것은 과거를 추억하는 데는 사람마다 포인트가 달라서일 거다. 그 시절 내 추억의 지점과 드라마의 지점이 어긋나 있으니…. 하나 그 시절 추억의 포인트가 없는 아이들에겐 지금 시대엔 찾을 수 없는 아날로그적 따뜻함과 낭만이 크게 가슴을 때렸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그렇게 90년대 낭만이 우리 아이들을 흔들고 있다.

 돌아보니 2013년은 과거사에 한 다리를 걸친 채 앞으로 달려보지 못한 모습으로 기억됐다. 1년 내내 우린 작년 이맘때 끝난 대선 후유증과 과거사 논쟁에 파묻혀 있었고, 진보와 보수의 낡은 이념대결은 범사회적으로 번져 날이 지고 새곤 했다. 과거를 끌어안고 있느라 오늘과 미래라는 말은 잊혀졌다. 10여 일 후, 2013년과 이별하고 맞게 될 신년엔 이 신물 나는 과거부터 털어내 버리고 싶다. 그리하여 밝아오는 신년엔 미래와 대면하게 되기를 고대한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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