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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응답했다, 202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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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020년 12월 건설사에 다니는 이미래(40)씨는 투명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돌돌 말아 가방에 넣고 출근길에 나섰다. 택시를 타자마자 디스플레이를 편 이씨는 중앙일보를 읽기 시작했다. 한참 기사를 읽다가 시계를 보니 외국인 바이어와의 미팅까지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지능형교통시스템(ITS)이 탑재된 택시는 실시간으로 교통 정보를 수집해 소통이 원활한 길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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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 도착한 이씨는 미팅 전에 짬을 내 주치의에게 진료를 받기로 했다. 2년 전 수술을 한 이씨의 심장에는 센서가 붙어 있어 심장혈관외과 주치의에게 실시간으로 심장 상태를 전송해주고 있다. 영상전화로 주치의는 약을 처방해줬다. 잠시 후 스페인 출신 바이어와 미팅이 시작됐다. 음성인식 통·번역기를 착용한 두 사람은 한국어와 스페인어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했다. 각자 모국어로 말하는데도 의사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성공적으로 미팅을 마친 이씨는 친환경 저에너지 건축기술로 건설 중인 전원주택단지의 시공 현황을 점검했다. 공장에서 생산한 건축 모듈을 현장에서 조립해 완성하는 기술 덕분에 공사기간이 절반으로 단축됐다. 그만큼 수익성이 월등히 높아졌다. 중동과 유럽 등 해외에서 사업 수주도 더 쉬워져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뛸 전망이다.

 18일 한국공학한림원이 발표한 ‘미래 100대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를 가정한 모습이다. 오랫동안 상상 속에 머물러 있던 장면들이 2020년께에는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 최고 권위의 공학기술인단체인 한국공학한림원은 이날 앞으로 20~30년간 한국 산업을 이끌어갈 100대 기술과 그 기술을 개발한 주역 217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100대 기술은 17개월간 120여 명의 공학기술 전문가들이 고심 끝에 뽑았다. 각 분야 주요 기업의 최고기술책임자(CTO)들로부터 검증도 받았다. 5~8년 내 상용화 가능성이 높고 ▶건강한 사회 ▶지속가능한 사회 ▶스마트한 사회 ▶안전한 사회 ▶성장하는 사회 등 공학한림원이 정한 5대 미래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선정됐다. 100대 기술을 확정한 최종선정위원회 이희범(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위원장은 “기술 있는 기업이 물건을 만들어내야 창조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며 “실현 가능한 기술과 그 기술을 개발한 주역을 선정함으로써 기업들이 어떤 방향키를 갖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경제를 견인할 100대 기술에 가장 많이 선정된 분야는 반도체·통신·디스플레이 등 전기전자정보공학 기술이었다. 스마트사회로 전진할 수 있는 원천 기술도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3D(3차원) 안경을 쓰지 않고도 입체 영상을 볼 수 있게 하는 무안경 3D 기술과 더 자연스러운 3차원 영상을 보여줄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 기술은 디스플레이 강국인 한국의 체력을 더욱 강화해줄 기술로 인정됐다. 실리콘 반도체 칩을 수십 마이크로미터 수준으로 얇게 연마해 수직으로 쌓는 기술(3차원 패키징 기술)은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 기기를 더 작게, 더 스마트하게, 더 플렉시블하게 만들기 위해 꼭 해결해야 할 과제다. 풀HD급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재생할 수 있게 해주는 기가비트 무선통신 기술은 5세대 무선인터넷(와이파이)으로 불리며 폭증하는 데이터 트래픽을 해소해줄 열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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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공학 분야에선 로봇 기술이 다양한 분야와 융합돼 성장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됐다. 사고로 잃은 신체 일부를 대신해주거나 인간의 원래 근력을 크게 증폭해주는 착용형 로봇, 미끄러짐 방지 기술이 적용돼 정확하게 청소할 위치를 찾아내는 청소로봇, 사람 몸속에 들어가 의사 대신 미세한 부위까지 수술을 해줄 지능형 수술로봇 등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화학생명 분야에서도 건강·지속가능·스마트한 사회로 가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 많이 개발됐다. 바이오 인공 장기나 주요 장기에 센서를 붙여 생체 신호를 분석해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기술, 혈액이나 객담 같은 신체 조직에서 얻은 샘플 하나로 20가지 이상의 원인 병원체를 진단할 수 있는 동시다중 진단기술 등이 활성화되면 병을 진단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다.

 이런 기술들을 개발한 주역들은 대부분 30~40대였다. 최연소자로 뽑힌 이태구(35) 삼성중공업 책임연구원은 친환경 선박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운항비를 절감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친환경 ‘그린 십’은 연료 사용량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중국에 쫓기고 있는 한국 조선산업이 세계 1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평가됐다. 선정 작업을 담당한 권오경 공학한림원 부회장은 “미래 한국을 먹여살릴 젊은 주역을 격려하고 더 많은 인재들을 키우기 위해 젊은 개발자 위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공학한림원은 앞으로 5년마다 미래를 이끌 100대 기술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통령선거 직전이나 직후에 발표해 새 정부가 국정 과제의 밑그림을 짜는 데 기초자료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정준양 공학한림원 회장은 “한국 경제가 선도자로 체질을 바꾸려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견인할 미래 기술을 선정해 지원하고, 이런 기술을 개발한 주역들을 꾸준히 격려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학한림원은 19일 오후 5시 조선호텔에서 100대 기술과 주역에 대한 시상식을 개최한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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