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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사이엔 수백 가지 톤과 뉘앙스가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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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호 13면

‘위네티카 드라이브-인’(1993), Gelatin silverprint, 111.9×149.2cm / ‘가속하는 부처’(원작 1997/재편집 2013), 제작·감독·편집: 스기모토 히로시, 사운드: 켄 이케다, 5분48초

-흑백 사진만 찍는 이유는.
“컬러 사진은 화학적으로 물들이는 느낌이다. 내가 참여해서 조절할 여지가 거의 없다. 하지만 흑백사진은 흰색부터 검정 사이에 수백 가지 톤과 뉘앙스가 있다. 나는 은빛 색조의 흑백 사진을 통해 진정성 있는 색을 보여주고 싶다.”

삼성미술관 리움 강연서 만난 스기모토 히로시

-바다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흑해건 태평양이건 이름 붙이기 전에 근원으로서의 바다를 찾는다. 그 변하지 않는 풍경을 염두에 둔 것이다. 육지 풍경은 계속 변화하지 않나. 고대인과 현대인이 시간을 초월해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바다에서 고대인이 느낀 생각을 현대인과 공유하고 싶었다.”

-사진은 언제 찍나.
“24시간 내내 기다린다. 보트나 요트가 지나다니지 않는 곳을 골라 캠핑을 한다.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되는 곳이다. 밤에, 특히 새벽에 아주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충분히 노출을 주면서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책을 읽는다. 많이 가져간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초상 사진이 작은 사이즈와 큰 사이즈가 있다.
“1980년대부터 큰 사이즈를 시작했다. 그런데 선물용으로 작은 사이즈가 필요하다고 해서 작은 것도 만들기 시작했다.”

-작은 것과 큰 것 느낌 차이가 있나.
“작건 크건 에너지는 같다. 미술관은 큰 것을 선호한다.”

-전통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교토의 옛 절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의 불상은 거의 설치미술 수준이다. 1000년 전 만들어진 1001개의 불상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이 있다. 당시 일본에서는 종교를 이미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일본 전통 문화는 언제부터 연구했나.
“1960년대는 학생운동이 극심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했다. 다른 독일 사상가를 비롯해 서구 철학도 많이 공부했다. 미국에 가서야 내가 일본인임을 자각했다. 70년대 캘리포니아에는 히피 문화가 한창이었다. 그들은 선불교에 관심이 많았다. 내게 ‘깨달음을 얻었냐’고 물었다. 그래서 ‘물론 얻었지, 너는 아직 못 얻었니’라고 대답하며 그때부터 다양한 일본 문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일본과 서구와 미국의 문화를 아우를 수 있었다.”

-서구와 아시아 문화의 차이가 있다면.
“아시아는 자연친화적 문화다. 서구 문화는 좀 다르다. 자연에 인간이 자꾸 개입하려 한다. 앞으로 아시아적 감수성이 중요하다. 이것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미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명은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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