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 강의 ‘1975억원 시장’의 과열경쟁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강일구

#1 한국의 인터넷 세계에서 유명세를 달리는 한 스타강사. 그는 강의 중 수시로 욕을 하고, 때때로 ‘유관순’ ‘독립군’ ‘링컨’으로 분장을 한 채 수업을 진행한다. 삽을 가지고 나와 강의 중 조는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면서 휘두르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튀는 말과 엉뚱한 행동으로 그는 네티즌에게 화제가 된 바 있다. 인터넷 세계에선 강의 중인 그의 모습을 캡처한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 2007년부터 온라인 카페를 운영하며 한국사를 가르쳐 온 최모(28)씨. 그는 지난 9월 주요 부위만 나뭇잎으로 가린 채 강의하는 모습이 세간에 알려져 논란이 됐다. 그는 “흥미 유발을 위해 시대별로 의상을 맞춰 입고 강의했다. 선사시대 부분을 강의하기 위해 거리에서 잎을 주워 선사시대 복장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사를 강의할 땐 옷에 돈을 붙였고, 현대사 강의를 할 땐 군복을 입기도 했다.
 
 2004년 4월 EBSi가 개설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인터넷 강의가 시작된 지 10년. 짧은 기간 한국 인터넷 강의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재 모습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강의를 내용보다는 당장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강의가 첫선을 보인 건 2000년 9월이다. 당시 학원가에서 유명했던 강사 손주은(52)씨가 메가스터디를 설립해 운영하면서다. 메가스터디가 시작한 이후 인터넷 강의는 인터넷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빠르게 퍼졌다. 2004년에는 EBS가 무료 동영상 강의를 제공하고 수능 연계 방침을 밝히면서 인터넷 강의가 더욱 보편화됐다. 사교육 헤게모니는 ‘오프라인 강의’에서 ‘온라인 강의’로 옮겨갔다. 대표적인 인터넷 강의 사설업체인 메가스터디의 중·고등학생 온라인 회원 수는 지난해 450만 명을 넘어섰다. 통계청의 ‘2012년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강의 시장 규모는 대략 1975억원 수준이다(EBS 무료 인터넷 강의 미포함).

 1세대 스타강사 출신인 이범 교육평론가의 말이다. “2000년 온라인 강의를 동시에 하기 시작하면서 2001년 4500명이던 오프라인 학생수가 2002년에는 2500명으로, 2003년에는 1500명으로 줄었다. 당시 3개월 오프라인 강의가 40만원 수준이었고, 온라인 강의는 12만원 수준이었는데 수입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프라인 학생들이 다 온라인으로 몰린 것이다.”

 우선 많은 강사진 사이에서 튀기 위해, 즉 ‘일타강사’가 되기 위해 변장에서부터 욕설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일타강사란 학원에서 가장 많은 수강생을 모집하는 강사를 일컫는 은어다.

프로야구 FA 방불케하는 인터넷 강사 시장
지난 9월 알몸강사로 논란이 됐던 최씨는 “강사 중에선 생계에 허덕이면서 생활하는 분이 많다. 경쟁이 심하다 보니 부끄러웠지만 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분장을 했다”고 말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인터넷 강의가 시작되면서 1년에 수백만원 버는 강사에서부터 수십억원까지 버는 강사가 생겨났다. 자연히 양극화가 심해지고 경쟁이 심해졌다. 프로야구의 자유계약(FA) 시장과 똑같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인 EBS도 수위만 낮을 뿐 튀기 위한 노력은 똑같다. EBS의 이모 강사는 지난해 6월 수학 강의 중 ‘항등원’과 ‘역원’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몸에 딱 붙는 티셔츠에 직접 글자를 적어놓고 외투를 벗으며 설명했다. 이를 두고 당시 인터넷에선 “항등원과 역원이 옷을 벗으면서 가르쳐야 할 정도의 난제인 거냐”는 비아냥이 돌았다. 현직 EBS 강사인 심주석(42) 교사는 “주위 교사들도 학원만큼은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시각적으로 튀어야겠다는 유혹을 많이 느낀다. 그때마다 ‘교육자가 가야 할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내용에 더욱 고민하곤 한다”고 말했다.

 최근 MBC 예능프로 ‘무한도전’에 출연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설민석 강사는 “과목별로 전국에 수만 명의 강사가 있기 때문에 경쟁이 심하다. 일부 신인 강사가 일타강사가 되겠다는 욕심 때문에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양정호(교육학) 교수는 “강사 스스로 교육자라는 인식을 갖고 자중해야겠지만 시스템 자체가 그걸 쉽지 않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 준하는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학원법에 조항을 신설하고, 미국의 일부 주(州)에서 하는 것처럼 강사 등록 시 교육청에서 인성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시·취업을 위한 강의에만 집중돼 있는 기형적인 구조도 한국 인터넷 강의 시장의 또 다른 문제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12년 e러닝(e-learning)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강의 이용자 중 상당수가 외국어(39.1%)와 입시(37.6%)를 위해 인터넷 강의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기본 소양을 위한 활용은 4.9%에 불과하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김두규 수석은 “우리나라는 주로 수능 강의와 자격증 강의에 집중돼 있다. 자격증도 특히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이 인기다”라고 말했다.
 
최근 주목받는 온라인 공개 강좌 ‘무크’
미국에서는 인터넷을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강의인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가 주목받고 있다. 무크란 ‘대규모 공개 온라인 강좌’다. 무크는 제휴 대학에서 온라인에 강좌를 개설하고, 교육 콘텐트를 공유한다. 수강생들은 인터넷을 통해 무료(일부 유료)로 수강하며 수강생들끼리 그룹을 구성해 공부한다. 5개월간 대표 무크 서비스인 ‘코세라(Coursera)’를 이용해 다섯 과목을 수강한 이수진(23)씨는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거나 사이트를 개설해 외국 학생들과 과제에 대해 토론하고 공유했다”고 말했다. 현재 코세라는 제휴 대학만 107개, 수강인원은 520만 명에 이른다. 고려대 정창덕(컴퓨터정보학) 교수는 “우리나라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우수한 IT 교육 기반을 갖고 있으면서도 입시 교육에만 몰두한다”며 “평생교육을 위해 인터넷 강의를 연구하고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도는 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교육정보 사이트 ‘KOCW’가 대표적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KOCW를 통해 대학 강의를 공개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처음으로 등록 강의 수가 5000건을 넘어섰다. 하지만 대부분 보여주기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임연욱(한국교육정보미디어학회장)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공개 강의가 양적으로 부족하고, 교수들이 지식의 전달자에서 지식의 관리자로 역할이 옮겨가고 있는데도 강의 자료만 올려놓은 뒤 관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수한 한국의 인터넷 강의 여건을 활용해 ‘입시·취업’에서 벗어나 ‘평생 교육’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창덕 교수의 말이다. “한국에서 대학만큼 잘 가르칠 수 있는 기관은 드물다. 대학이 앞장설 수 있도록 참여 교수에게는 인센티브를, 수강 학생에게는 수료증을 줘 평생교육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전담팀을 만들어 한국형 무크를 설계하고 각 대학의 교수를 자문위원으로 두어야 한다.”

노진호 기자·어고은 인턴기자 yesn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