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삼성전자의 미래, 상반된 두 가지 전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김영욱
논설위원·경제전문기자

들어 올리면 목이 댕강 부러지는 선풍기를 만들던 회사, 연간 매출액 3억원으로 금성사(옛 LG전자)의 20분의 1밖에 되지 않던 기업, 40년 전 삼성전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은 연간 매출액이 200조원이 넘고 분기별 영업이익이 무려 10조원이나 되는 회사, 전 세계 기업들이 삼성 방식(Samsung Way)과 이건희이즘(ism)을 배우기 위해 안달인 회사 역시 삼성전자다. 삼성의 성공비결을 찾기 위해 수많은 책과 논문들이 쏟아지는 까닭이다.

무수한 이유가 있지만, 나는 두 가지가 핵심이라 본다. 제조경쟁력과 철저한 모방이다. 삼성전자는 오래전부터 남보다 빨리, 효율적으로 상품화하는 제조능력이 탁월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끝없는 고민과 투자를 했다. 개발속도를 높이고, 개발과 생산과정을 통합해 빨리 상품화하려 노력했다. 단적인 예가 모든 기술 정보를 삼성그룹 전체가 공유함으로써 혁신 제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정보시스템(ECIM)의 구축이다. 개발 프로세스를 전사 차원과 사업부, 상품 등 3층 구조로 만든 프로덕트 데이터 매니지먼트(PDM)도 만들었다.

모방을 혁신으로 진화하는 능력도 대단했다. 삼성전자는 선진 기업의 제품과 기술을 철저하게 연구해 빠르고 완벽하게 흡수했다. 이를 토대로 독창적인 상품이나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런 모방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품질관리나 교육훈련시스템, 경영방식까지도 모방했다. 자기 몸에 맞게 변형하면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이게 동전의 양면이란 점이다. 산업표준이 정해져 있고, 발전방향이 뚜렷한 제품과 기술에는 삼성의 강점이 먹힌다. 하지만 산업표준이 없고, 발전방향이 보이지 않는 제품과 기술에선 그렇지 않다. 제조경쟁력을 운운할 필요가 없고, 모방 대상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하게 맞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조경쟁력과 모방 능력을 강조하면 낙관론, 창의성과 혁신능력을 강조하면 비관론에 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2030 대담한 미래』란 책을 쓴 최윤식 소장을 들 수 있다. 그는 여기서 “삼성은 2~3년 뒤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삼성의 강점인 제조경쟁력도 빛을 발할 수 없다고 한다.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면 제조 모델 수를 늘려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제조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노키아와 소니, 모토로라, 야후 등의 몰락 사례도 든다. “정보기술(IT) 업체가 1등을 유지하는 기간은 평균 3~5년”이라고도 했다.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안은 혁신이다. 노키아와 소니 등이 1등에서 밀려난 건 지속적인 혁신의 실패란다. “삼성전자가 거대한 시스템의 변화를 선도해 새로운 시장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하는 건 그래서다. 문제는 “삼성은 지금도 혁신에서는 1등이 아닌, 2등 회사”라는 점이다. 요약하면 삼성전자가 계속 1등을 하려면 세상을 뒤흔드는 메가트렌드를 만들라는 거다.

 하지만 낙관론도 만만찮다. 키움증권에서 내놓은 ‘2000년대 노키아와 2010년대 삼성전자’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건 제조경쟁력이다. 스마트폰에 국한된 설명이지만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능력이나 신속한 제품출시 주기, 다양한 라인업, 규모의 경제 등은 세계 1등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는 시장이 성숙될수록 빛을 발한다. 보급형 스마트폰에서는 남보다 값싸게 만드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삼성전자는 비록 메가트렌드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특정산업의 트렌드를 바꾸는 데는 앞장서 왔다고 강조한다. “수익성 약화는 불가피하지만 시장지배력은 오히려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다.

 이제 결론이다. 나는 낙관론 쪽이다. 삼성의 제조경쟁력과 추격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창의와 혁신이 없더라도 이것만 있으면 삼성은 쓰러지지 않는다. 지금처럼 나라경제를 뒤흔들 만큼의 위상은 유지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전제는 있다. 끊임없는 위기경영의 조성과 이를 통한 자기 변혁이다. 무엇보다 오너가 방심하지 않는다면 삼성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김영욱 논설위원·경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