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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처럼 … 장성택 숙청 현장 TV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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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권력무상이자 완전한 추락이었다. “반당·종파분자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한다”는 결정서 낭독이 채 끝나기도 전에 2명의 군관이 달려들었다. 청중석 앞줄에 앉아있던 장성택(67)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짚고 겨우 일어선 그는 양팔을 잡힌 채로 끌려나갔다. 마치 중국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 서기의 체포와 재판 장면이 평양에서 재연된 듯했다.

 휴일인 8일 평양 중심부 창광산지구 노동당 중앙위 청사에서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는 장성택 거세를 위한 모임이었다. 관영 조선중앙TV는 9일 오후 이 장면을 전격 공개했다. 하루 전 기록영화 삭제 등으로 어느 정도 예견됐었지만 생생한 영상 공개는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7월 15일(일요일) 벌어진 이영호 총참모장 숙청 때는 없던 일이다.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평양발 보도에서 “지난 시기에도 숙청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결정 내용을 이튿날에 공개 보도한 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앞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9일 오전 6시 당 정치국 확대회의 소식을 전했다. 장성택에 대한 직무 해임과 일체의 칭호 박탈, 그리고 출당·제명 조치였다. 중앙통신은 “주체혁명위업 계승의 중대한 역사적 시기에 당의 유일적 영도를 거세하려 들면서 분파책동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감히 당에 도전해나서는 위험천만한 반당반혁명적 종파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장성택의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로 이번 사태를 규정했다. 북한에서 종파(宗派)란 개인이나 파벌이익을 위해 당과 혁명운동을 저해하는 중대행위다.

 김정은(29) 당 제1비서 겸 국방위 제1위원장은 평소와 달리 금테안경을 쓴 채 회의를 주재했다. 이용하 당 행정부 제1부부장 등 장성택 세력에 대한 공개처형이 이뤄진 지난달 하순부터 그는 백두산(양강도 삼지연군)에 머물렀다. 평양으로 귀환하자마자 고모부를 향한 숙청의 칼을 빼든 것이다.

 장성택에겐 김정은의 권위에 도전하고 자파 세력을 확장하려 한 혐의가 씌워졌다. 통신은 “장성택은 앞에서는 당과 수령을 받드는 척하고 뒤에 돌아서는 동상이몽(同床異夢)·양봉음위(陽奉陰違·보는 앞에서는 순종하는 체하고 속으로 딴마음 먹는다는 의미)하는 종파적 행위를 일삼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에 불복하는 반혁명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회의에는 당 중앙위 정치국위원(124명)과 후보위원(105명)이 참석했다. 김정은의 우측엔 정치국 상무위원인 최용해 군 총정치국장, 왼쪽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자리했다. 박봉주 총리와 김기남 당 비서 등이 발언자로 나서 장성택을 거세게 몰아세우는 장면이 북한 TV에 노출됐다. 중앙위원들은 앞다퉈 ‘장성택 때리기’를 위한 발언권을 요청했고 장성택이 끌려나가자 기립박수를 쳤다. 부인 김경희 당 비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정치국 회의로 장성택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후폭풍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반당종파 혐의를 부각한 게 오히려 주민들 사이에 ‘김정은 체제가 단단하지 못하다’는 여론을 조성할 수 있다. 궁지에 몰린 세력들의 반발심을 자극할 수도 있다. 김구섭 전 국방연구원장은 “장성택을 숙청할 정도면 김일성 집권 시 종파사건(1956년)이나 김정일 초기 심화조(1997년)보다 심각하단 얘기”라며 “엄청난 숙청의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사망 2주기(17일)를 앞둔 평양 권력이 요동치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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