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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샌 국가보조금 1700억 … 포르셰 타고 유흥비 탕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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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10년 경북 의성건강복지타운 시행사 대표 조모(44)씨는 자신이 시행을 맡고 있는 공사의 기성률(전체 공사비 중 얼마의 공사비가 투입됐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을 부풀리기로 마음먹었다. 공사 진행 정도에 따라 국가보조금이 지급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었다. 조씨가 빼돌린 국가보조금은 모두 18억원. 그는 이 돈으로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 월세로 거주하면서 고급 스포츠카인 ‘포르셰’를 리스해 타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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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K통상 대표 이모(38)씨는 러시아에 농장을 개발해 곡물을 수입하겠다며 해외농업개발기금 융자를 신청했다. 곡물의 안정적 수입원 확보를 위해 국가가 연 2%의 저리로 빌려주는 국책사업 기금이었다. 이씨는 기업사냥꾼·사채업자와 짜고 무자본으로 인수한 리조트를 담보로 제공하고 관련 서류는 위조했다. 이씨는 72억여원의 기금을 빌린 뒤 생활비와 유흥비 등으로 탕진했다.

 검찰과 경찰이 국가보조금 관련 비리에 대해 집중 단속을 벌였다. 적발된 사람은 모두 3300여 명. 부당 지급받거나 유용된 ‘혈세’는 1700억원에 달했다.

 대검찰청과 경찰청은 지난 6월부터 국가보조금 전반에 대해 공조 수사를 벌여 3349명을 입건하고 이 가운데 127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8일 밝혔다. 3222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경찰은 6월 1일부터 177일 동안 어린이집 등 복지분야 보조금 중심으로 일제 단속을 벌였다. 총 2737명을 입건(31명 구속)해 894억원의 부정수급액을 적발했다. 검찰도 8월 23일부터 100일 동안 고액보조금 지급 분야에 대해 집중 단속을 벌여 612명을 입건(96명 구속)하고 806억원의 보조금 부정수급 사실을 밝혀냈다.

 합동 수사 결과 보건·복지, 고용, 농수축산, 연구·개발, 문화·체육·관광 등 보조금이 지급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비리가 확인됐다. 보건·복지 분야의 부정수급액 적발이 405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복지 분야의 예산 누수를 철저히 막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수사를 지휘한 대검 반부패부 이동열 선임연구관은 “최근 예산이 집중된 데다 분야가 많은 복지 쪽에 수사가 집중됐다”며 “복지 분야 외에도 농업이나 체육단체, 관광, 연구 분야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국가보조금 부정수급 비리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고용 분야에서는 급여대장을 조작해 근로자들의 휴업급여를 지급한 것처럼 속여 고용노동부의 고용유지 지원금 4억5800만원을 가로챈 춘천지역 건설회사 대표 등 20여 명을 적발해 이 가운데 2명을 구속기소했다. 미취업 대학생들의 고용 촉진을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창직(創職) 인턴지원금’ 등 3억8800만원을 허위로 타낸 서울 D대학 신모 교수도 재판에 넘겨졌다.

 부산의 D대학 정모 전 총장과 최모 이사장은 재학생 충원율을 조작해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역량 우수대학’ 보조금 26억여원을 타냈다가 불구속 기소됐다.

 국가보조금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민간단체나 개인사업자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자금을 국고에서 지원하는 제도다. 매년 규모도 크게 늘어 2006년 30조원대에서 올해는 55조원 넘게 편성됐다. 국가 총 예산의 14%에 달한다.

 검찰 관계자는 “보조금 범죄를 통해서는 어떠한 경제적 이익도 얻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고히 뿌리내리도록 범죄수익을 끝까지 추적해 철저히 환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은 올해 말까지였던 국고보조금 비리 수사 시한을 연장해 상시감시체계를 갖출 예정이다.

이동현 기자

◆국가보조금=국가·지방자치단체가 복지·산업육성·기술개발 등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설·운영자금 일부를 무상 혹은 저리로 지원하는 것. 연구비 보조금이나 무역 진흥 보조금, 공공사업 투자 보조금 등이 있다. 지난해 기준 정부 보조금은 46조4900억원(전체 예산의 1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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