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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 적자에 길 막힌 '영암 F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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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제자동차경주대회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가 내년 F1 공식 일정에서 제외됐다. 내후년 재입성 여지는 남아있지만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F1은 2010년부터 7년간 전남 영암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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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자동차연맹(FIA) 산하 세계모터스포츠평의회는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회의를 열어 한국과 미국, 멕시코 등 3개 그랑프리 대회를 내년 일정에서 제외했다. 당초 내년 코리아 그랑프리는 러시아 소치에 밀려 10월에서 4월로 개최 시기를 옮긴 상태였다. 내년 F1은 3월 16일 호주에서부터 11월 23일 아랍에미리트(UAE)까지 19개 국가를 순회하며 열린다.

 개최권료 협상 결렬이 대회 무산의 결정적인 이유다. F1조직위원회(전남도)는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FOM(포뮬러원매니지먼트)과의 협상을 거쳐 지난해 4370만 달러(약 503억원)였던 개최권료를 올해는 40% 수준인 2700만 달러(약 302억원)로 깎았다. 이어 내년에는 2000만 달러(약 212억원)로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난색을 표하던 FOM은 결국 한국 대회를 제외했다.

 대회 개최 자체가 무산되면서 이제 막 F1 메카로 자리 잡기 시작한 전남 영암의 위상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잔여 대회(3년)를 모두 포기하면 국제소송을 피하기 어렵고 경기장 활용도 과제로 남는다. F1 서킷을 연계한 차 부품 고급브랜드화 연구개발사업과 자동차 튜닝 핵심 기반 구축사업 또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F1 한국대회는 처음부터 무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남도는 사업비가 수천억원이 드는 국제행사인데도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채 2006년 F1을 유치했다. 전남을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메카로 만들자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국비를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다. F1대회는 경주장 건설, 운영비 등으로 지금까지 7436억원을 투입했으며 이 가운데 도비만 5595억원을 썼다.

 당시 타당성조사를 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장밋빛 청사진도 무리수를 두게 한 요인이었다. 2016년까지 일곱 차례 대회를 치르면 1112억원의 흑자가 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2010년 첫 대회 개최 후 4년 동안 1902억원의 운영적자가 났다. 타당성 조사 과정에서 FOM에 줘야 하는 개최권료나 TV 중계권료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2011년 ‘개최권료 등은 누락시키고 수익을 과다 산출했다’고 지적했다. 입장권 매출이 제자리에 머무른 것도 적자 규모를 키웠다. 올해 입장권 수입은 121억원으로 지난해 128억원보다 줄었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5일 전남도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한 해 쉬고 2015년 이후 다시 개최하는 방안 등을 숙고해 보자”고 밝혔다. 또 최종선 전남도 F1지원담당관은 “2015년 복귀에 대해 F1 운영회사 측이 어느 정도 동의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F1 복귀를 장담할 수 없다. 개최권료를 이미 깎아준 FOM이 다른 개최국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추가 인하해 주지 않을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FIA 등이 한국 대회가 국제적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1을 유치한 박준영 전남지사는 내년 6월 임기를 마치면 3선 제한 규정에 따라 다시 출마하지 못한다. 새로 당선된 도지사가 F1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면 대회를 다시 여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최경호·오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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