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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화웨이 마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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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가 한국의 무선 네트워크사업에 진출키로 한 데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우려의 목소리를 내 논란이 되고 있다. 미 의회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나서 자칫 한·미 간 외교 마찰로 비화될 조짐도 보인다.

 LG유플러스는 10월 21일 광대역 LTE망을 구축하기 위해 중국 화웨이의 기지국 장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화웨이는 세계 2위의 통신장비업체로 한국 기지국 장비 시장에 진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화웨이의 한국 무선시장 진출이 한·미 동맹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최근 비공식 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 측에 전달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들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와의 인터뷰에서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당국자는 “한국에서 도입하는 화웨이의 기지국 장비가 미국과 동맹국 간의 통신 내용을 감시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도 있다”며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위 당국자도 한국 정부와 논의했는지 묻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한 뒤 “우리가 화웨이 건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점만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2011년 10월 긴급 무선 응답시스템 구축사업에서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화웨이를 배제시킨 일이 있다. 지난해에는 동맹국인 호주의 광대역 무선통신 사업에 화웨이가 참여하려고 하자 비공식 경로로 여러 차례 우려를 전달해 끝내 화웨이를 경쟁입찰에서 제외시켰다. 특히 미 국방부와 정보당국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고,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에서 이동통신 사업에 화웨이가 진출하는 건 자칫 통신망 해킹 등을 통한 스파이 활동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미 의회에서도 같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로버트 메넨데즈(뉴저지·민주) 상원 외교위원장과 다이앤 파인스타인(캘리포니아·민주) 상원 정보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척 헤이글 국방장관, 존 케리 국무장관,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에게 공식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서한에서 “화웨이가 한국의 LTE 통신망 사업에 참여하는 데 대해 크게 우려한다”며 “통신기간망 보안은 한·미 간 안보 동맹을 운영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이 서한은 조 바이든 부통령의 한·중·일 3국 방문에 앞서 행정부에 전달됐다. 이에 미 언론들은 바이든 부통령의 방한 때 비공식 의제로 화웨이 문제가 논의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상원과 별개로 하원 정보위원회는 지난해 10월 화웨이와 ZTE 등 중국의 통신장비업체들이 네트워크 장비에 ‘백도어 프로그램(비인가 접근 시도 프로그램)’을 심어 스파이 행위를 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었다.

 하지만 미 정부는 자칫 화웨이 문제가 다른 나라의 경제행위에 간여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개적인 문제 제기 대신 비공식 통로를 통해 조심스럽게 사안을 다루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특히 에드워드 스노든 전 국가안보국(NSA) 임시직원에 의해 미 정보기관이 주요 동맹국들을 상대로 정보를 수집해온 사실이 폭로된 뒤라서 미국 통신업체의 해외 진출에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LG유플러스 측은 “통신망 관리를 외주에 맡기는 미국·영국과 달리 우리는 통신망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해킹 등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며 “화웨이로 인한 보안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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