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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역사는 피의 숙청사 … 공개 총살, 무조건 복종 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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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개처형은 ‘공포의 통치술’이다. 최소한의 존엄도 갖추지 못한 채 처참하게 최후를 맞는 장면을 군중들이 목도케 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유도한다. 장성택 실각설이 불거진 북한에서 공개처형 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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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선 장성택(북한 국방위 부위원장 겸 당 행정부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행정부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의 공개처형 여부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1월 말에 (장성택의) 측근 둘에 대한 공개처형이 일어난 건 사실이죠’라는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전날 국가정보원이 보고한 내용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북한에서 고위직 공개처형은 1997년 9월 농업담당 비서가 농정실패와 관련돼서 간첩죄까지 포함해 공개처형된 게 유일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또 “2000년대 중반 이후 인권문제가 제기되니까 일반인에 대해서도 공개처형을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북한에서 공개처형은 핵심 고위직 간부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도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3일에도 강원도 원산 등 적어도 7 곳의 지방도시에서 80여 명이 공개 총살됐다는 첩보가 있다는 얘기다. 2010년 3월에는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이 공개총살 당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후계자 시절 경제업적으로 삼기 위해 2009년 11월 단행한 화폐개혁이 주민 반발로 실패하자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이듬해 1월에는 보위부 실세인 류경 부부장이 남한을 비공개리에 다녀간 뒤 간첩죄로 몰려 공개처형됐다. 탈북자 출신인 외통위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은 외통위에서 “북한에서 공개처형이라고 하면 총살을 의미한다”며 “나도 목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역사는 숙청의 역사다. 숙청의 극단적 형태로 자주 일어나곤 했던 게 공개처형이다. 김일성은 6·25전쟁 중 소련의 후원을 받던 허가이를 제거(북한은 자살이라 주장)하고, 남로당 출신 박헌영과 이승엽을 간첩죄로 숙청했다. 이어 최대 경쟁자였던 최창익과 윤공흠 등 연안파 세력들을 거세함으로써 김일성 체제를 확립했다. 1960년대 들어선 김정일의 후계체제에 반대하는 갑산파와 군부 고위 인사의 숙청이 이어졌다.

 68년 1월 청와대 기습과 같은 해 10월 무장공비 남파 등이 실패하자 당시 민족보위상(현 인민무력부장) 김창봉과 허봉학 총정치국장 등 군부 고위 인사들을 좌경·맹종주의자로 잘라낸 게 대표적이다. 진희관(통일학) 인제대 교수는 “일제시대 중국과 소련에서 활동했던 김일성은 해방 후 북한에 들어와 반대세력을 하나씩 제거했다”며 “북한 정권은 피의 숙청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70년대 초반 후계자로 자리 잡아가던 김정일은 이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김일성 3년상이 끝난 97년 말 서관희 당 농업비서를 간첩죄로 몰아 공개처형한 것을 시작으로 고삐를 본격적으로 조이기 시작했다. 수해 등 자연재해로 식량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 200만~300만 명이 굶어죽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던 책임을 서관희에게 물은 것이다. 비사회주의 요소 검열작업을 담당하는 소위 ‘심화조’를 결성해 2000여 명을 숙청하기도 했다. 후계자로 자리를 굳힌 75년에는 경쟁관계에 있던 작은아버지 김영주(김일성의 동생) 당 조직지도부장마저 숙청했다. 당시 최용해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1비서(현 총정치국장)도 거액의 외화 보유 등 비리사실이 탄로나 지방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이번에 불거진 장성택 측근들의 공개처형과 관련해선 집권 초반인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와 관련이 있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이 당국자는 “과거엔 좌천 정도에 머물렀던 사안도 최근 들어 처벌 수위를 높여 엄격하고 단호한 처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사람으로 꼽히던 이영호 총참모장이 지난해 7월 개인 비리 혐의로 숙청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다만 장성택이나 이영호 등은 그 신분이나 지위를 고려해 당사자 대신 측근들을 극형에 처하는 방식으로 무력화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 양상이다.

정용수·강인식·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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