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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왕' 경찰 수사 때 … 간부, 후배 불러 "이금열 봐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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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 재개발 구역. ‘철거왕’ 이금열 다원그룹 회장은 가재울 용역 사업 수주를 위해 조합 간부, 구청 공무원 등에게 10억원 상당의 금품로비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상선 기자]

수원지검 특수부는 올해 8월 수사를 피해 잠적한 ‘철거왕’ 이금열(44) 다원그룹 회장을 체포해 10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최근에는 이 회장이 시의회 의원과 지자체 공무원 등을 상대로 45억원 상당의 금품 로비를 한 혐의를 밝혀내 추가 기소했다. 검찰 수사에선 이 회장이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조합 총무이사와 구청 공무원, 정비업체 대표 등에게 집중 로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수원지검이 이 회장을 체포하기 2년여 전부터 이 회장의 재개발 비리를 내사하던 곳이 있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였다. 하지만 경찰은 이 회장을 사법처리하지 못한 채 지난해 7월 사건을 종결했다. 본지 취재 결과 당시 경찰은 이 회장에게 범죄 혐의에 대한 단서와 정황,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재개발 비리 수사를 담당했던 서대문경찰서 최모(53) 경위를 수사가 진행되던 지난해 1월 뚜렷한 이유 없이 다른 곳으로 인사조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윗선에 줄 돈 준비” 목격자 증언 나와

 현재 수원지검은 2011~2012년 경찰의 가재울재개발 비리 수사 과정에서 외압과 로비가 있었다는 진술과 정황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4일 “이씨가 경찰 고위급 인사에게 로비를 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정황이 있어 대상과 규모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지검은 지난달 중순 최 경위를 참고인으로 소환해 당시 수사 내용과 그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또 이 회장과 측근들이 수사 무마 로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알려진 이모(52)씨의 비망록과 진술서를 확보하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이씨는 가재울 인근의 재개발 조합원이자 주민대책위 활동을 하던 중 이 회장이 한 대화를 듣고 그 구체적 내용을 자신의 비망록에 정리해 놓았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목격자 이씨를 불러 조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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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진이 입수한 이씨 작성 진술서에 따르면 목격자 이씨는 2011년 11월 9일 서울 은평구 갈현동 연신내역 6번 출구 앞에서 이 회장을 목격했다. 이 회장은 검은색 에쿠스 차량 트렁크에 실린 세 개의 사과상자를 보여주며 측근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측근 중 한 명이 “(엄지손가락을 펴보이며) 이번에는 대가리(윗선)에게 가는데 좀 더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이 회장은 “더 준비해 주겠다. 그동안 잘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꼬리가 잡혔다. ‘또라이’한테 걸렸는데 확실히 지원해 줄 테니 ‘검’ ‘경’ 윗선에 확실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서대문경찰서가 가재울재개발사업과 관련해 이 회장이 연루된 비리 수사를 한창 진행하던 때였다. 담당자였던 최 경위는 구의원을 뇌물수수 혐의로 형사 입건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장을 정면으로 겨냥하면서부터 수사는 암초에 부닥쳤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지난해 1월 최 경위는 다른 경찰서 지구대로 전보됐다. 취재 결과 당시 최 경위에 대한 인사조치는 ‘조직의 화합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 관계자는 "정기 인사 시기의 정상적인 인사였던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돌연 좌천 담당 형사 “수사 압박 받았다”

최 경위는 인사발령 직후 경찰청에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에는 “수사 지휘라인으로부터 압박과 방해를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수사가 진행되던 2011년 10월 중순 최 경위는 서울 반포동 팔레스호텔 커피숍에서 지방에서 근무하는 권모 총경을 만났다. 권 총경은 “이금열을 봐 달라. 박○○(정비업체 대표)는 빼 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최 경위가 인사조치된 후 경찰청 감찰 조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권 총경은 “고향 후배라 말하게 된 것”이라며 “혐의가 큰 것도 아니라서 수사를 빨리 끝내라고 조언했다”고 해명했다. 이는 권 총경이 사표를 쓰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최 경위가 수사에서 배제된 후 조합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2011년 2월 서대문서는 수사관 11명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려 “가재울재개발 비리를 엄중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특별수사팀은 재개발 비리 관련자 10여 명을 기소 의견으로 서울서부지검에 송치했지만 이 회장에 대해서는 ‘공소권 없음(불기소)’ 의견을 달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수사에 착수한 수원지검은 가재울재개발과 관련해 이 회장이 서대문구청 6급 공무원에게 2000만원, 조합 총무이사에게 공사 수주 대가로 3억5000만원을 준 것을 밝혀내고, 돈 받은 두 사람을 구속했다. 또 조합과 함께 재개발사업을 이끌어가는 정비업체 대표 박모(※권 전 총경이 최 경위에게 빼달라고 했던 인물로 현재 수배 중)씨에게 6억4700만원을 준 사실도 찾아냈다. 검찰은 박씨가 받은 이 돈이 경찰 등에 대한 로비 자금으로 쓰였을 수 있다고 보고 용처를 추적중이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수사팀은 최선을 다했으며 그 당시 이 회장은 드러난 혐의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고 해명했다.

경찰 “공소권 없음” … 검찰은 구속기소

 취재 과정에선 최 경위 인사와 관련한 또 다른 증언이 나왔다. 수도권 경찰서장 출신으로 최 경위와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는 이모 전 총경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징계 도 없었는데 일선서 수사관을 지구대로 좌천시킨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며 “경찰 고위 인사를 세 차례 만나 최 경위의 원대 복귀를 건의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고위 인사는 “나는 (인사에) 관여하지 않았고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난처하다”는 취지로 얘기했다는 게 이 전 총경의 증언이다.

 한편 수원지검은 재개발 비리의 핵심 인물인 정비업체 대표 박씨를 검거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탐사팀=고성표·윤호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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