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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서울, 어디까지 더 멋질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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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최근 몇몇 친구와 함께 독일 기업인 겸 정치사상가를 모시고 서울 일원을 구경시켜준 적이 있다. 그날 오후 북촌·서촌·동대문·시청·광장시장 등을 둘러봤다. 그 손님은 서울의 건축물부터 지하철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길에서 마주친 외국인들이 어디로 가는지까지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 마치 수도 서울에 대한 지식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 한참을 살았기 때문에 제3자나 국외자로서 서울을 바라보는 게 아닐 때가 자주 있다. 나 역시 서울이란 도시에 대한 나름의 인식이 있으며 어떻게 하면 서울을 더 멋지게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해본다. 내 생각을 서울을 잠시 방문한 사람의 그것과 비교해보기도 한다. 대개 나보다 훨씬 훌륭하고 더 여행을 많이 다녀본 분이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 디자인프라자에 큰 관심을 보인(내 의견은 그와 다르다) 그에게 물어봤다. “ 서울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맨 처음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더 많은 공원 만들 거요.” 나는 모든 사람이 이 말에 수긍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서울의 상당 부분을 공원이 차지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산이다. 도심 공원이 있어도 콘크리트로 덮인 경우가 많다. 녹지대는 출입이 금지되고 ‘잔디를 보호합시다’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기 일쑤다. 이렇게 하면 관리하기는 수월할지 모르지만 공원의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마련이다.

 자연과 미학은 행복한 삶의 핵심 요소다. 한국 사회의 심리적 복지 향상을 진지하게 한번 고민해보자. 도시의 각 구역에 있는 거대한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약간의 토지를 할애해 나무를 심는 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약간의 녹지대를 위해 아파트 건설사업을 한두 건 포기하는 것을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사는 동네 근처를 보면 우리는 지속적인 ‘공사 중’ 상태에서 사는 것 같다. 이 모든 개발은 과연 지향하는 최종 목표가 있기라도 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최근 헬기 충돌 사고로 공항에서 가까운 123층짜리 초고층 빌딩 신축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공군은 물론 여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을 이런 빌딩이 과연 이 도시에 필요한지 일반인은 의문을 제기해선 안 되는 것일까? 서울은 인구가 최고조에 이르러 아파트도 이전처럼 잘 팔리지 않는다. 고급 사무실 수요는 여의도 에서도 별로 없다.

 그날 우리 일행은 동대문까지 걸어갔다. 휴대전화 가게를 지나치는데 그곳에는-말할 것도 없이!-믿기 어려울 정도로 시끄러운 음악이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스피커가 아예 거리에 나와 있었다. 서울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는, 일행 중 한 명이 조용히 말했다. “왜 이렇게 시끄럽나요?” 동감이었다. 나도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하지만 내가 골라서 들을 때만 그럴 뿐이다. 이런 시끄러운 음악이 과연 장사에 도움이 될까? 만약 그렇다면 지나가는 행인들이 받는 짜증 덕분에 이득을 보는 것이지 않은가.

 서울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동네에서 장사하는 가게 주인도 눈에 거슬리는 초대형 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중에게 혐오감을 준다며 거리 구걸은 금지하면서 시각적·청각적 오염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나는 한때 인사동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그곳을 걸을 때마다 장사꾼들이 내 앞에서 손뼉을 치며 호객한다. 그리고 붉은 재킷을 입은 사람들이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관광 안내)!’이라고 (분명히 좋은 의도겠지만) 소리친다. 인사동 화장품 가게들에 대해선 아예 말을 꺼내지도 않 겠다.

 최근 한국에서도 보행자 전용거리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홍대 주차장 골목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 자동차 통행을 차단하고 길 중간에 나무를 심은 뒤 카페나 술집 주인들에게 탁자를 밖에 놓도록 권유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면 좋겠다. 그런 거리에선 텐트로 만든 임시 칸막이 노점 대신 나무로 된 매력적인 노점과 정기적인 거리시장의 날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노점 주인들도 더 이상 고함 지르며 호객하거나 눈에 거슬리는 대형 간판을 쓰지 않고도 물건을 팔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역 상권이 살아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