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엄마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6) 일본 나가노현 도미시의 공립 시게노 소학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1998년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와 오차노미즈여대를 거쳐 도쿄대 대학원(교육행정학)을 나왔다. 도쿄에서 살다 지금은 남편 직장 때문에 2011년 3월부터 나가노현 도미시에 살고 있다. 딸 가연이(8)는 대학 부설 보육원과 사립 유치원, 공립 보육원을 거쳐 도미시 공립 시게노 소학교(초등학교) 2학년에 다닌다.

 일본 공립학교는 1980~90년대 학교 폭력과 학급 붕괴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도시에서 사립학교를 선호하는 기류가 나타난 것도 이런 이유다. 사립학교가 경제 형편은 물론 학력이 우수한 학생을 가려 뽑으니 진학 실적이 좋고, 그러면 또 다음 신입생 모집에 사람이 몰리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반면 공립학교는 정반대 여건 속에서 발버둥치는 형편이다.

 하지만 딸을 공립 보육원과 공립 초등학교에 보낸 경험으로 보자면 일본 공립학교는 아직 믿을 만하다. 여러 면에서 아이의 성장에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 학교와 비교했을 때 더 그렇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본 초등학교는 입학하면 일주일의 적응기간을 거친 다음 곧바로 오후 3시 정도까지 학교에서 생활한다. 동네별로 통학 루트가 정해져 있어 한 동네 학생들이 함께 등·하교를 한다. 예컨대 등교할 때는 학부모와 아이들이 약속 장소에 다 모이면 학생끼리 학교에 간다. 1학년은 상급생이 인솔해 간다. 여름방학 동안 수영하러 학교를 오갈 때도 마찬가지다. 하교 역시 학교에서 동네별로 줄 선 다음 차례대로 출발한다. 아이들끼리 안전하게 등·하교할 수 있는 방식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등·하교하는 학생 대열에 차가 돌진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집단 등·하교라 피해가 더 컸다. 그래서인지 봄·가을 두차례 있는 교통안전 주간에 교사와 학부모가 등굣길 지도를 하거나, 하굣길에 교사가 중간까지 인솔하기도 한다.

 등·하교뿐 아니라 학교는 이렇게 아이들이 스스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가정과 연계해 교육한다. 매일 오후 9시에 잠자리에 들어 오전 6시에 일어나는 등 시간을 지키는 습관을 들이도록 가르친다. 또 수업 시간에는 다른 친구가 발표할 때 몸을 그 친구를 향해 돌려 귀를 기울이라고 지도한다. 교사의 질문에 한 학생이 답을 했다고 그게 끝이 아니다. 발표한 학생은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며 친구들 의견을 묻고, 친구들은 또 여기에 답한다.

 특히 수학 시간에는 교사뿐 아니라 잘하는 학생이 다른 친구에게 설명해 준다. 이렇게 다른 친구가 문제를 풀 때까지 기다리며 도와주는 모습도 대견하지만,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창피해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친구 도움을 받는 아이들도 기특하다. 이처럼 일본 공립학교는 못 따라가는 학생을 내버려두고 진도를 나가거나, 못 하는 친구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독서지도도 마음에 든다. 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두 권을 빌려 집에서 읽은 뒤 다음날 반환하도록 하고, 한 달에 한 번은 학부모가 교실에 와서 동화책을 읽어준다. 또 독서의 달(12월)이 되면 교장과 교사들이 학급을 돌아가며 책을 읽어준다. 그런가 하면 도서관에서 함께 백과사전을 읽고 나서는 여기서 본 동식물을 찾으러 다 같이 교정 탐험에 나서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과 가까워진다. 어릴 때 도마뱀이나 사마귀를 보면 뒷걸음질치던 가연이도 친구와 함께 도마뱀을 잡아와서는 기르겠다고 할 정도다.

누구 걸레가 더 더러운지 경쟁

 일본 학교가 매우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 중 하나는 아이들이 자기 일 스스로 하기다. 사실 보육원부터 이런 교육이 시작된다. 자기 물건 챙기기나 쓴 물건 정리정돈하기는 기본이다. 초등학교에선 과제물 준비나 급식 나르기·배식·뒷정리, 그리고 청소도 모두 학생 몫이다.

 그렇다 보니 가연이는 아침에 분주하다. 숙제한 과제물은 전날 저녁 미리 챙기지만 아침에 챙겨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담은 도서가방, 체육복 가방, 실내화 가방, 급식 앞치마·두건 가방, 악기 등이다. 이걸 다 가방에 담으니 당연히 무겁다. 하지만 아무리 무거워도 자기 짐은 자기가 든다. 처음엔 딸이 불쌍해 들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걸 본 친구들이 “왜 가방을 엄마가 들어주느냐”고 자꾸 물어 그 뒤로 그만뒀다.

 가연이는 보육원 때부터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치우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세 살 때 한국 친척집에 가서 평소처럼 했더니 어른들이 매우 놀라던 기억이 생생하다.

 교실 의자에는 항상 걸레가 걸려 있다. 걸레가 더러워야 청소를 제대로 한 셈이라 아이들 사이에 누구 걸레가 가장 더러운지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청소와 정리정돈은 교실 안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엔 고학년을 중심으로 눈을 치운다. 쉬운 일이 아닌데도 도구를 익숙하게 사용해 쓱쓱 치우는 학생들을 보면 감탄할 정도다.

  교사는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한 학생에게 손수 만든 메달을 학기말에 준다.

 청소만이 아니다. 가연이가 받아온 메달을 보면 ‘청소를 잘 해서’ ‘수영시간에 잠수를 할 수 있어서’ ‘화분에 물을 잘 줘서’ 같은 이유가 쓰여 있다. 교사가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이렇게 꼼꼼히 살피면서 잘한 부분을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하는 거다.

 시게노 초등학교에선 일상적으로 생태 체험을 한다. 매년 학년별로 학교 주변 논밭에서 벼·무·감자·콩 등을 기른다. 그룹을 나눠 매일 돌보고 관찰해 나중에 반 친구들 앞에서 발표한다. 여름에는 교사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이 잡아온 개구리나 사슴벌레, 사마귀, 도마뱀 등으로 교실이 가득 찬다. 자기 일을 자기가 하는 게 당연한 아이들이 다른 생명을 돌보고 기르는 일도 배우는 것이다.

 또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수확해 조리하는 시간도 있다. 가연이는 1학년 때 무를 캐서 오뎅국을 끓이고, 감자를 수확해 샐러드를 만들었다. 감자 샐러드를 만들 때면 껍질을 깎는 것부터 자르고 삶고 으깨는 과정을 모두 교사의 지도를 받아 스스로 한다. 5~6학년 가정 수업에서는 조리나 재봉, 청소, 세탁방법 등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능을 다 배운다. 예를 들어 재봉시간에는 끈으로 조일 수 있는 큰 주머니나 앞치마를 만든다.

 직업교육 차원의 체험학습도 충실하다. 오래전부터 ‘커리어 교육’이라고 해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직업 교육을 하고 있다. 가연이는 농업대학교에서 농산물 재배에 대해 배운 뒤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 받는 체험을 했다. 또 공장에 가서 두부 만드는 것을 보고 와서 체험기를 작성하기도 했다.

뚱뚱한 아이가 없는 학교

 시게노 초등학교에는 자녀의 비만을 걱정하는 학부모가 거의 없다. 걸어서 수십 분 거리를 통학하고 아침 시간이나 쉬는 시간, 체육 시간, 방과후 시간을 이용해 몸을 열심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학교 전용 수영장에서 수영도 배운다. 고학년이 되면 자전거 타고 통학하는 아이도 있다. 학교에서는 봄학기면 경찰을 초청해 자전거 바르게 타는 법을 가르친다. 3~4학년은 운동장에 모의도로를 설치해 지도하고, 5~6학년은 실제 도로에 나가 주행연습을 한다.

 가연이는 어려서부터 잘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줄 타고 오르기나 암벽 타기, 흔들다리 건너기 등을 잘 못했는데 보육원과 초등학교에서 체력을 기른 지금은 스스로 “원숭이가 됐다”고 자랑할 수준이 됐다.

 매주 수요일 오후는 ‘시게노코 타임’이 있다. 모든 학생이 체육관에 마련한 각종 코스에 도전하며 체력과 협동심, 사회성을 기르는 시간이다. 선생님과 함께 신나게 소리지르고 뛰면서 노는 시간이 학교 생활에 활력을 주는 것 같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아동관이나 아동클럽에서 오후 6시까지 시간을 보낸다. 정부가 운영하는 일종의 방과후 학교 시설인데, 아동관은 무료, 아동클럽은 유료다. 시게노 초등학교에는 학교 안에 아동클럽이 있다. 아동관은 지역마다 있다. 이곳에는 상주하는 담당 지도원이 있어 함께 놀아주는 것은 물론 학교 숙제를 도와주기도 한다. 숙제부터 하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대부분은 아동관에 가면 숙제부터 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아동관에 처음 등록할 때 학생을 데리러 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언제 데리러 올 것인지를 기입한다. 지도원들이 학부모 얼굴과 차량정보까지 기억할 정도라 낯선 사람이 드나드는 일은 거의 없다.

교장·교감까지 분장하고 공연에 참여

 운동회나 음악회 같은 학교 행사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협력해 준비한다. 음악회 때 보면 교사들 열정이 대단하다. 노래와 악기를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무대에 올라가는 방법, 듣는 자세 등 종합적으로 교육한다. 저학년은 이런 학교 행사에서 고학년이 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교사들이 아이들만 무대에 세우는 게 아니다. 본인들도 프로그램을 준비해 학생과 학부모 앞에 선다. ‘웃음보를 자아내는 교사들’ 순서는 매년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코너다. 교사들이 노래는 물론이고 도라에몽이나 원피스처럼 아이들이 잘 아는 애니메이션 등장인물로 변장해 연기를 한다. 유명 아이돌 가수의 노래와 춤을 선보이기도 한다.

 교장과 교감도 참여한다. 한국에선 교사는 물론이고 관리 책임자가 이런 무대에 서는 것이 아마 흔하지 않을 것이다. 일을 다 끝내고 학교에 남아 몰래 연습했을 교사의 수고를 생각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아이들은 일년 내내 무대에 선 교사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즐거워한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교사와 아이들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해주는 것 같다.

좋은 교우 관계를 맺도록 돕는 노하우

 시게노 초등학교에선 따돌림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인다. 학생회에선 ‘나카요시(사이 좋은) 위원회’를 설치해 매달 행사를 연다. 매일 아침 학생끼리, 그리고 교사와 학생끼리 하이 파이브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수업 시작 전 강당에서 전교생이 모여 기차놀이 같은 게임을 하는 행사도 간혹 열린다. 학년을 뛰어넘어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는 셈이다.

 학급에선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거나 칭찬하고 싶을 때 카드에 써서 서로 전달한다. 교실 벽에는 그런 카드로 채워진 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이 적어놓은 칭찬카드에는 ‘글씨를 잘 쓰니까 대단해’ ‘상냥하게 대해줘서 좋아’ ‘언제나 옷을 예쁘게 입는 것 같다’ ‘청소 잘 하더라’ ‘재미있어서 좋아’ ‘줄넘기를 잘넘는다’ 같은 글이 적혀 있다.

 1학년 때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쿡쿡 찌르고 아픈 말’을 종이에 써서 교실 앞으로 가지고 나가 직접 찢어 통에 넣으면서 앞으로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서로 다짐하는 시간도 있었다. 가연이 반 친구 중 전학 간 친구가 있었는데 교사와 학생들이 이벤트를 준비했다. 집에 있는 상자를 잔뜩 모아 와서 대형 미로를 만들어줬다. 소중한 친구를 생각하면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과정이나 이벤트 당일 친구의 인사에 울고 웃으면서 아이들은 만남과 이별에 대해 배웠을 것이다.

일본 학교의 재난 대처법
지진 나면 교사가 부모처럼 돌봐
비상시 학교에 있는 게 제일 안전

일본의 학제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으로 한국과 같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지만 유치원·고등학교도 일부 학비를 지원한다. 사립유치원에 다니면 공립 수준만 부담하도록 보조금을 주고, 고교 역시 수업료를 지원한다.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이 대학 진학률이다. 80%에 달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50%를 겨우 넘는다. 초등학교 때 이미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학생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을 비롯해 대학 진학 실적이 좋은 사립초·중·고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한국의 특목고 입시나 대입과 다를 바 없다. 일본 고교는 기본적으로 학생 선발권이 있다. 일부 지역에서 평준화 제도를 한때 실시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선발제로 바뀌었다. 공립 초등학교·중학교는 한국의 학군과 비슷한 학구에 따라 지정한다. 다만 도쿄의 일부 구는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에 지원하면 추첨으로 선발하는 학교 선택제를 도입하고 있다.

 교사가 되려면 대학 교직 과정을 이수해 교원면허장을 딴 뒤 지방정부의 채용시험(임용고사)에 합격해야 한다. 채용 후 1년은 조건부 채용기간이다. 교사의 월급이나 지위, 연금 면에서 한국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일본 교사는 방학 기간에도 학교에 출근한다. 또 한국 공립학교 교사가 국가공무원(교육공무원)인 것과 달리 지방공무원 신분이다.

 일본 교사는 권위적이지 않다. 특히 보육원 교사는 실내에선 대부분 무릎을 꿇고 실외에선 허리를 낮추며 아이들을 존중한다. 원장도 예외가 아니다. 초등학교 교장은 급식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급식을 가장 먼저 먹어 본다. 비가 오고 천둥이 치면 학생을 데리러 오는 학부모를 안내하기 위해 우산도 쓰지 않은 채 현관 밖에 서서 안내하는 교감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지진 등 재난에 침착하게 대응하지만 특히 교육기관의 대비 시스템이 감탄할 정도다.

 예를 들어 학교에선 평소 방재교육을 자주 실시한다. 내진설계는 기본이고 학교 안에 방재용 물품과 저수탱크 등이 구비돼 있다. 비상 시 학교가 곧바로 대피장소가 되는 것이다. 지진 등 재난이 발생하면 교사는 퇴근하지 않고 남아 학생을 보호하고 인솔한다. 학교별 메뉴얼에 따라 현장을 이탈할 수 없게 돼 있다.

 2011년 큰 지진이 일어나 전철 운행이 마비되는 등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나는 아이의 유치원과 가까운 곳에 있어 딸을 데리러 갈 수 있었지만 교통이 마비돼 그럴 수 없는 부모가 많았다. 유치원 교사들은 학부모가 마중 올 때까지 대기했다. 심지어 대학원 연구실도 마찬가지다. 지도 교수가 전화나 메일로 학생 신변을 일일이 확인하는 걸 목격한 적도 있다. 집에서 아이와 연락이 안 된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서도 지도 교수는 “그래도 나는 귀가할 수 없다”며 “아이는 학교에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아내를 안심시키는 통화 내용을 들었다. 이처럼 일본에선 비상시 학교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 학교와 교사가 재난 관련 역할을 담당하는 일본을 한국도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엄마 김지영(34·한국교육개발원 일본 통신원)씨
정리=김성탁 기자

엄마 김지영씨·딸 박가연양·아빠 박상준씨(오른쪽부터)

※ 江南通新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