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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은 달랐다 … 해체부터 복원까지 18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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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보 11호인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15년간의 해체·연구작업을 거쳐 지난달 26일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사진은 해체 전 미륵사지 석탑. [사진 문화재청]

지난달 26일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국보 11호 미륵사지 석탑의 기둥 받침돌인 심초석(心礎石)을 놓는 정초식(定礎式)이 열렸다. 본격적인 석탑 복원공사가 시작됨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1998년 문화재청이 실시한 구조안전검사에서 석탑이 붕괴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은 뒤 15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미륵사지 석탑은 해체발굴작업에 10년, 연구조사에 5년의 공이 들어갔다.

문화재위원회는 1999년 석탑의 해체보수를 결정했다. 이후 2년간 해체 방식에 대한 연구를 거쳐 2001년 10월 해체가 시작됐다. 작업이 완료된 건 10년 만인 2010년 10월이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때 발라진 콘크리트를 떼어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15년 일제는 무너지기 직전인 석탑을 긴급보수한다며 시멘트를 발라 석탑 형태를 유지시켰다.

해체작업을 맡은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사람이 일일이 정으로 쪼아 떼어내는 작업을 선택했다. 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 김영철 사무관은 “탑에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체과정에서 나온 석재를 보존처리하고 복원공사에 적합한 새로운 돌의 특성을 연구하는 작업도 함께 이뤄졌다.

 해체 후엔 복원 수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9층으로 추정되는 완성된 탑 형태여야 한다, 일제의 공사 전 온전한 모습으로 있던 2층까지 해야 한다’는 등의 토론이 진행됐다. 결국 기존 석재가 남아 있는 6층까지 복원하는 걸로 결정됐다. 문화재청은 석탑 복원공사가 이르면 2016년 8월 끝날 것으로 전망한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작업이 장기간 진행될 수 있었던 건 문화재연구소가 해체·발굴 등 주요 작업을 직접 주도했기 때문이다.

2001년 문화재청과 전라북도는 민간업체에 해체작업을 맡기려 했다. 하지만 석탑이 국보이고 석재문화재를 해체·복원한 선례가 거의 없어 정부기관인 문화재연구소가 맡기로 결정했다. 당시 문화재연구소장이었던 조유전(71)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해체 기간이 길어지자 언론과 일부 시민들은 ‘미륵사지 석탑은 돈 먹는 하마’라는 등의 비판을 했다”며 “그래도 석탑 복원의 교범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실제 문화재연구소는 해체작업 과정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고석재 보존처리와 석재문화재 관리방안 수립에 활용하고 있다.

조 원장은 “무엇보다 콘크리트를 정으로 떼어내며 석공들이 축적한 고난도 기술은 향후 문화재 복원에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체작업을 민간업체가 맡았다면 1~2년 만에 끝내고 복원공사를 했겠지만 곧바로 문제가 발견됐을 것”이라며 “숭례문도 국보 1호에 맞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해체·복원 방식에 대한 고민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한은화·이승호·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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