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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부는 한·중·일 … 붓 들어 녹여보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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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동아세아 서예가 4인전’에 선보일 하석 박원규씨의 ‘독실(篤實)’. 『주역(周易)』의 한 구절인 독실(인정있고 성실하다)을 한간체(漢簡體)로 썼다. [사진 박원규]

21세기에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가 형제처럼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그 첫째가 한자다. ‘한·중·일 삼국 공통 상용한자 808자’를 최근 확정한 ‘한·중·일 30인회’는 한자를 아시아의 ‘싱킹 툴(Thinking tool)’, 즉 사고의 도구라고 부른다. 한자가 알파벳 같은 강력한 문자권을 만들면서 아시아에 문화적 연대를 심어준다는 것이다.

 공통 상용한자를 쓰게 되면 자연스레 따라올 수 있는 삼국의 문화 전통이 붓글씨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에서 각기 서예(書藝), 수파(書法), 쇼도(書道)라 부르는 붓글씨는 삼국의 미래를 문화로 묶어주는 마음의 고향이 될 수 있다.

 중국 교육부가 올 8월 전국 초·중학교에 수파 교육을 의무화하는 ‘서예 학당 프로젝트’ 방안을 추진하도록 지시한 건 대학의 서예과가 인기학과인 나라답다. 서예가 골동이자 박제가 돼버린 우리 처지에서 되새길 점이다.

 이런 흐름 덕일까. 아시아 서예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전시회가 늘고 있다. 국제 정세는 복잡다기하지만 그 강파른 국면을 부드러운 붓글씨로 풀자는 뜻이 전해진다.

 ‘2013 세계 서예 전북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은 하석(何石) 박원규(66)씨가 발의한 ‘동아세아 서예가 4인전’은 전시회 제목이 ‘협풍묵우(協風墨雨)’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자, 먹의 비가 내린다는 뜻이다. 붓을 들어 서로의 가슴을 적시면서 우의를 다지는 걸음걸음으로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상태를 눅여보자고 제안한다.

 13~19일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4인 전에는 박씨 외에 중국의 쑤스수(64·蘇士澍), 대만의 두중가오(65·杜忠誥), 일본의 다카키 세이우(64·高木聖雨)가 참여한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만큼 이력이 만만치 않은 글씨의 대가들이다.

 쑤스수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우애가 깊은 중국 서법가협회 이사다. 어린 시절부터 서법과 전각에 능해 2001년 중국서협성립 20주년 영예장을 탔다. 두중가오는 ‘서예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글씨에 사통오달한 인물이다. 대만 중국서법학회 고문으로 일하며 대만 서예계의 최고 상인 ‘오상련장’을 수상했다. 다카키 세이우는 일본 서도연맹 이사로 다양한 서도 교재 저술로 일본 현대 서예의 발전에 큰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한시(漢詩)를 글씨로 풀며 시각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점으로 유명하다.

 아시아 4개국 서예가를 불러 모은 박원규씨는 “서예란 붓으로 자신의 마음상태를 드러내는 것으로 한 글자에 마음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4인전이 4개국 국민의 마음을 드러내며 화합하는 마당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02-733-1981.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막한 ‘제1회 한·중 의원 공무원 서예전’은 한국과 중국의 정치인들 70 여명이 글씨로 양국의 평화를 기원하는 자리다. 세계문화예술발전중심(회장 이무호)이 나서 두 나라 정부 각료와 의원들 중 평소 붓글씨를 즐겨 쓰는 이들의 작품을 모았다.

 함께 출품하며 글씨 전반을 평한 우죽(友竹) 양진니(85) 한국서협 고문은 “글씨는 유일직자(惟一直字),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고 만사에 대응함은 오직 곧을 직(直) 한 자 뿐이니 두 나라 정치인들이 글씨를 쓰며 한 자 한 자에 그 직을 세워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02-921-904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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