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숭례문 부실 복원 1911일의 비망록 <상> 장인은 무력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국보 1호’ 숭례문 복원 공사는 왜 부실이 드러나게 된 것일까. 본지는 지난달 14일부터 30일까지 문화재청·시공사·장인·인부 등 숭례문 복원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또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화재 이후 총 34차례 진행됐던 복구 자문단 회의록을 단독 입수해 분석했다. 취재 결과 숭례문 복원 공사는 ▶묵살된 장인의 전문성과 실종된 장인의식 ▶무리한 공기(工期) ▶과도한 홍보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벌어진 총체적 부실이었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부실 1호’ 건축물이 돼버린 배경에 대한 심층 기획 기사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숭례문 화재부터 복원, 부실공사 논란까지 1911일간의 비망록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락(剝落·벗겨짐)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선 아교와 합성수지 접착제(아크릴 에멀전)를 섞어서 사용해야 한다.”

 2009년 11월 30일. 홍창원(58) 단청장은 이런 내용의 제안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홍 단청장은 열흘 뒤인 12월 10일 숭례문 단청 공사 책임자로 지정됐다. 하지만 이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다. 숭례문 단청은 준공 5개월 만에 곳곳이 벗겨져 부실공사 논란으로 이어졌다. 본지가 숭례문 공사 관련자들을 인터뷰하고 관련 회의록 등을 입수해 검토한 결과 숭례문 부실공사는 장인의 전문성을 무시한 자문단과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실종된 장인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2012년 6월 단청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숭례문 복구 자문단 회의에선 단청을 칠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격론이 벌어졌다. 홍 단청장은 회의에서 “아교만 사용할 경우 물에 씻겨 흘러내려가 보기 흉하고 우기(雨期)에 기온이 높을 때 부패되거나 변색돼 외관을 해칠 가능성이 많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또 “보기 좋게 아교로 해놓고 장마철이 지나서 단청이 일어나면 국민이 어떻게 보겠느냐”며 “아교와 아크릴 에멀전을 혼합해 단청을 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숭례문 복구자문단 자문위원 대다수는 전통 방식으로 순수 아교만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본지가 입수한 복구자문단 6차 기술분과 회의록(2010년 3월 11일)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이날 회의에는 ▶박언곤 자문단 기술위원장 등 자문위원(8명) ▶최종덕 숭례문 복구단장 등 문화재청 관계자(8명) ▶신응수 대목장 등 장인(4명) 등이 참석했다.

 ▶A씨=“단청장 홍창원씨가 자연접착제(아교) 사용 시 일찍 박락될 우려를 나타냈다.”

 ▶B씨=“아교 등 전통접착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보존처리업계의 문제 제기가 많다.”

 결국 숭례문 단청 공사는 아교만 사용해 단청을 칠한 뒤 표면에 오동나무기름(동유)을 덧칠하는 방식으로 2012년 6월 최종 결정됐다. 홍 단청장은 본지 취재진에 “40여 년간 단청 작업을 해 온 나도 처음으로 해본 방식”이라며 “전통 기법으로 해야 한다는 자문단 의견이 강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15세에 처음으로 단청일을 시작해 창경궁 문정전, 경복궁 경회루, 덕수궁 중화전, 경복궁 근정전 등 국내 주요 궁궐과 사찰의 단청을 도맡아 온 중요무형문화재(제48호)다. 홍 단청장의 주장에 대해 복구단 자문위원장이었던 박언곤 홍익대 명예교수는 “ 자문단 회의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종합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숭례문 복구단 전체 회의록(총 34회)에 따르면 회의 참석자로 장인들이 명기된 것은 일곱 차례뿐이었다. 숭례문 공사에 참여한 한 장인은 “자문단 회의에 참석하라고 해서 갔더니 명패도 없이 뒷줄에 앉으라고 해서 매우 불쾌했다. 발언권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복구자문단 6차 회의록에는 한 장인이 “그동안 추진 사항에서 장인은 배제되었다 ” 며 불만을 나타내는 대목이 나온다. 취재진과 만난 또 다른 장인도 “ 우리가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복구 자문위원이었던 윤홍로 명지대 초빙교수는 “장인들이 자문위원회에 참관하면서 공식 발언권은 없어도 할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며 “회의 결과가 부당했다면 이의를 제기했으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인들의 열악한 대우도 문제로 지적된다. 본지 취재 결과 숭례문 복원 공사에서 대목장·단청장·석장·제와장·번와장 등 각 장인들은 시공사인 명헌건설에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명헌건설 관계자는 “문화재청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하라고 해서 각 장인들과 근로 계약을 맺었다”며 “각 장인들에게 상징적 수준의 월급만 줬다”고 말했다.

 문제가 있는 공사 방식에 대해선 장인들이 끝까지 문제제기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창원 단청장은 아교만 쓸 경우 접착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문단 결정에 떠밀려 자신도 처음 해보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신응수 대목장도 지난해 본지 기자와 만나 “목재 함수율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최근 목재 문제가 불거진 뒤엔 “목재에 수분이 얼마가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일부 장인은 문화재 수리 자격증을 대여해 줬다가 최근 경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익명을 원한 한 장인은 “공사를 진행하면서 중도에 거절 못한 우리도 문제가 있는 건 맞다”며 “장인이 장인 대접이 아니라 장이 수준의 취급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장인 의식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한은화·이승호·이서준 기자

관련기사
▶ 문화재청, 숭례문 복원하면서 목재·기와 값도 몰랐다
▶ 문화재 수리 때 표준품셈 … 韓·러시아만 있는 제도
▶ 시공사 "목재 상당량 대목장 회사 것"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