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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우근 칼럼

우리 시대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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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1999년 미국 콜로라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평소 따돌림을 당해 온 두 학생이 교사와 급우 등 13명을 살해하고 자살한 총기사건이 발생했다. 4월 20일, 하필이면 살인마 히틀러의 생일이었을까. 이 끔찍한 사건 직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제프 딕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칼럼이 올라왔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낮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좁아졌다. 공기정화기가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됐고, 원자는 쪼갤 수 있어도 편견은 부수지 못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 건너 이웃을 만나기는 힘들어졌다.” 칼럼의 일부다.

이 칼럼은 딕슨의 글이 아니라 미국 시애틀의 한 대형 교회 목사인 밥 무어헤드의 설교로 알려졌는데, 실은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글에 여러 사람이 한두 줄씩 보태고 있다는데, 나도 어쭙잖게 몇 줄 덧붙여볼까 한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삶을 성찰하는 시간은 도리어 짧아졌다. 인터넷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검색하지만 제 마음속은 한 번도 살피지 않는다. 정치문화·대중문화·오락문화에 음주문화·시위문화까지…, 문화라는 말은 흔해졌지만 진정한 문화를 만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우리 시대의 역설은 끝이 없다. ‘정의 사회 구현’과 ‘보통 사람의 시대’를 외치던 권력자들이 보통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할 천문학적 액수의 뇌물을 받은 범죄로 귀양을 가고 옥살이까지 했다. 욕된 재물을 끌어안고 추징금 납부를 줄곧 미뤄오는 그 불굴의 탐욕 앞에 보통 사람들의 가슴은 구멍이라도 뚫린 듯 허탈하기만 하다.

본인이나 아들의 병역문제가 투명하지 못한 고위 공직자들이 힘없는 서민의 아들딸에게 휴전선을 떠맡기고 짐짓 국가안보를 걱정한다. 거리에서 터지던 최루가스는 국회 안에 뿌려지고, 국회의원들의 집회는 거리의 천막에서 열린다. 희망버스가 달려가는 곳곳마다 지역 주민과 영세 상인들은 실망의 한숨을 쏟아낸다. 이 우울한 역설들이 국민을 서글프게 한다.

예술·스포츠·기업 등 민간의 여러 부문들이 세계를 향해 도약하며 국민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고 있는데, 입으로는 희망의 정치를 말하면서 허구한 날 정쟁만 일삼는 이 나라 정치권은 언제까지 ‘희망 없는 집단’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시급한 민생 법안도 희망 없이 수북이 쌓여만 간다.

입만 열면 국민통합을 부르짖는 정치인들이 건국 대통령의 묘역은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는 터에, 6·25 전범(戰犯)의 시신에 참배한 밀입북 피고인은 ‘동방예의지국의 법정’에서 당당히 무죄판결을 받는다. 현충원에 누운 6·25 희생자들에 대한 예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대한민국 헌법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가 대한민국 헌법체제를 찾아 탈북한 동포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일 민족배신자보다 더 밉다는 이유에서다. 탈북자들이 배신(?)한 것은 억압과 빈곤의 수령 독재인데, 그것이 그렇게도 미운 일인가. 그 헌법 교수의 머릿속에는 어떤 헌법정신이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NLL(북방한계선)에서 한·미 훈련하면… 북한이 쏴야죠.” 연평도 포격 3주년에 정의구현사제단의 원로신부가 내뱉은 말이다. 아무리 사상이 다르다 해도 우리 민·군 20여 명이 살상된 비극에 ‘쏴야죠’라니, 하느님의 사랑을 전한다는 사제가 강론이라고 내놓을 언사인가. 예수는 불의한 대제사장의 종에게 응징의 칼을 휘두른 수제자 베드로를 꾸짖으며 그 종이 입은 상처를 어루만져 낫게 해주었다. 이것이 생명과 사랑의 복음이다. ‘쏴야죠’는 생명에 대한 모독이자 복음의 역설일 뿐이다. 북의 세습독재와 인권 참상에는 아예 입을 닫아버린 사람들이니, 그 역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저들이 구현하겠다는 정의의 실체도.

중국의 무력 증강과 해양 패권(覇權) 추구, 일본의 재무장과 미·일의 군사적 결속, 북한의 핵 위협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등으로 동북아에 격랑의 물결이 일고 있는데, 나라의 안위(安危)를 고민해야 할 국회는 아직도 1년 전의 대통령 선거를 놓고 지루한 싸움만 계속하고 있다. 국회 해산론까지 등장할 만큼 암담하기만 한 우리 내부의 분열상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큰 안보의 위협이 아닐까.

남을 탓할 겨를이 없다. 우리 안에 유전자처럼 단단히 틀어박힌 모순부터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무어헤드 목사는 성추문에 시달리다가 교회를 떠나야 했다. 영혼의 오염을 개탄하며 ‘우리 시대의 역설’을 설교했다는 성직자가 말이다. 그야말로 기막힌 역설 아닌가. 그러나 어찌 그 사람뿐이겠는가. 우리 스스로가 역설투성이요, 모순덩어리인 것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