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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환자, 병보다 주변의 시선에 더 큰 상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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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기만 하면 일상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약이 독하지도 않다’.

올해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가 최초로 발병한 지 32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다양한 치료제가 개발됐다. 에이즈의 위험성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국립중앙의료원 신형식(사진) 감염병센터장은 “3가지 약제를 동시에 투여하는 ‘칵테일요법’이 개발된 이후 사망률이 현저히 줄었고, 치료약을 잘 복용하면 50년 이상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에이즈가 ‘걸리면 죽는 병’에서 ‘관리하는 병’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세계 에이즈 신규 감염자는 2001년 대비 33% 줄었고, 사망자도 16% 감소했다. 우리나라 역시 감소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에이즈 치료방침이 조기 치료로 바뀌고,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감염 위험성이 상당히 낮아진 덕분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CD4양성림프구(면역 기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세포)’가 혈액 1마이크로리터당 약 350개 이하로 떨어지면 치료를 시작하도록 권장했다. 이제는 감염 확인 즉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다. 신 센터장은 “조기에 치료하면 환자의 면역기능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고, 질병 확산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이즈는 오해가 가장 많은 질병 중 하나다.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는 생존력이 아주 약해 인체를 벗어나면 바로 파괴된다. 그래서 악수나 포옹 등의 신체접촉으로 전염되지 않는다. 땀·침·눈물·배설물 등으로도 감염되지 않는다. 음식을 같이 먹어도 괜찮다. 신 센터장은 “HIV가 몸속에서 나오자마자 사멸하므로 환자와 키스를 해도 문제가 없다”며 “에이즈 환자의 피가 우리 손에 묻어도 전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이즈 감염경로로 알려진 성 접촉 시에도 감염되지 않을 수 있다. 환자가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는 경우라면 가능하다. 신 센터장은 “과거에는 약이 성관계 시 감염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제는 남성 환자가 약을 잘 복용하면 여성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이 에이즈 예방약을 복용한다면 더욱 안전하다”며 “에이즈가 전염성 측면에서는 B형 감염보다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즈는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신 센터장은 “이제는 에이즈와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이즈 감염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 학교나 직장에서 냉대를 받거나 취업 시 차별을 받게 된다. 가족으로부터도 멀어진다. 건강보험 가입 시에도 성병이라는 이유로 가입이 제한되기도 한다. 사회적 차별로 에이즈 환자는 더욱 고통을 받는다. 신 센터장은 “차별에 따른 정신적 피해가 상당해 에이즈 환자는 심리적으로 우울하고 불안한 상황이 된다”며 “그러면 사회생활과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도 생겨 건강이 악화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에이즈 환자는 ‘에이즈’라는 병보다 사회로부터 얻는 마음의 병이 더 무섭다”고 덧붙였다.

류장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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