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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현장] 책 잘 팔리는 자리 잡아라 … 작은 출판사들 '3분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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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교보문고 신간 프레젠테이션에 참가한 한 출판사 직원이 공들여 만든 책을 소개하고 있다. 단 3분 안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와 리허설은 필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후 3시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22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세미나실.

“뒤편에 준비한 차 한잔씩 드세요”라고 교보문고 이복선 파트장이 권했지만 “너무 떨려서 못 먹겠다”며 모두 안절부절 못 한다. 오늘은 3시에 시작하는 프레젠테이션(PT)으로 12월 한 달 동안 광화문점 중앙 복도에 전시할 책을 결정하는 날이다. 베스트셀러나 유명 저자의 책도 아닌데 독자의 손길이 자주 닿는 명당 자리에 책을 진열할 수 있는 것이다. 마케팅 비용이 없는 작은 출판사에겐 절호의 기회다.

 ◆20~40개 출판사 경쟁=이번 달은 24개 출판사가 출전했다. 이 중 투표로 10권을 뽑는다. 관건은 단 3분의 PT. 3분이 지나면 매몰차게 “삐삐삐” 벨이 울린다. 다소 가혹해 보이지만 많을 때는 40여 출판사가 참여하기 때문에 시간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잠시만요. 동영상 하나 보고 가실게요!”

 한 젊은 청년이 최신 유행어로 PT를 시작했다. 77개 라면 조리법을 소개한 『라면천국』(리스컴)의 마케터다.

땀을 뻘뻘 흘리며 라면을 삼키는 CF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투사된다. “홍고추와 김치를 송송 썬 해장라면, 몸에도 좋고 소화도 잘되는 차돌박이라면 등 깨알 같은 조리법이 담겼습니다.” 면발이 ‘후루룩’ 빨려 들어가는 소리에 위장은 꿈틀대고 책에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이번엔 감성 공략이다. 에세이 『오늘 또, 사랑을 미뤘다』(아템포)의 담당자가 없는 시간을 쪼개 노래를 자청했다. “‘사랑한다’ ‘감사하다’는 따뜻한 말을 못해 후회하는 분들을 만나 사연을 들어본 책”이라며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부르기 시작했다. 덜덜 떨면서도 낮게 깔리는 목리에 책 만든이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딸들을 위해 영어 학습만화 『판타지 알파벳 콜렉터』를 만들었다는 겜툰의 송경민 대표, 2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만화 『환절기』(이숲)를 그리면서 위로를 받았다는 저자 이동은씨, 인쇄소에서 갓 나온 『카페에서 책읽기2』를 들고 달려왔다는 나무발전소 김명숙 대표 등 화려한 시각자료와 수려한 말발이 세미나실을 수놓는다.

 ◆지난해 8월부터 열어=교보문고가 중앙 복도를 출판사에게 개방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다. 좋은 책을 만들고도 알릴 방법이 없는 작은 출판사들의 요청에 시작됐다. 선정도 그들에게 맡겼다. 참가자들이 자사책을 뺀 나머지 책에 투표하고, 교보문고 북마스터 5명이 각 1표씩 행사한다. 11월은 3차 투표까지 진행될 정도로 치열했다. 최종 두 권을 놓고 재투표를 하는데 “둘 다 뽑아달라”는 탄성이 터졌다.

 매대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출판계 사정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한국의 유교화 과정』(너머북스)으로 참가한 이한나씨는 “하루에도 수십 권씩 신간이 쏟아지는데 대형서점에 책을 깔고 홍보할 수 있는 기회는 유명 저자나 광고비를 쓸 수 있는 큰 출판사 위주”라며 “광고비가 없는 우리는 한 달이 지나면 매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 한번이라도 더 소개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네 작은 서점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책을 전시·소개할 공간이 사라진 것도 문제다. 작가 폴 오스터의 부인 시리 허스트베트의 소설 『내가 사랑했던 것』을 소개한 뮤진트리 박남주 실장은 “예전엔 동네 서점에서 책이 보이면 사기도 하고 지적 자극도 받았는데, 지금은 어려운 일”이라며 "신간 PT를 다른 지점에도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날 최다 득표를 한 책은 신생출판사 큐리어스가 만든 『글쓰기 좋은 질문 642』였다. 미국 예술가 35명이 창작의 글감이 될만한 질문 642개를 던지고, 읽는 사람이 답을 채우는 독특한 형식에 표가 쏟아졌다.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교보문고 광화문점 중앙 복도
매달 책 10권에 매대 내줘
시청각자료·노래·말솜씨 총동원
출판사들이 직접 해당 도서 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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