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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1시간 멘토 변신 … 책임감 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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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8월 6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시의 로즈미니 고교 2학년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오클랜드(뉴질랜드)=윤석만 기자]

“축구공을 잘 차려면 발의 위치가 무엇보다 중요해. 공보다 약간 뒤쪽에 축이 되는 발을 놓고 반대 발로는 가볍게 공을 건드린다고 생각해봐.”

 지난 8월 6일 오전 뉴질랜드 오클랜드시 북쪽에 있는 로즈미니 고등학교(Rosemini College). 이 학교 운동장에선 특별한 체육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교사는 이곳 고교생 4명, 학생은 인근의 페리페리 초등학교(Perryperry Primary School) 어린이들이었다. “선생님, 공을 차는데 자꾸 헛발질을 하게 돼요.” 잔뜩 인상을 구긴 휴거(9)가 한 손에 공을 들고 필립(18)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조급한 마음을 가져선 안 돼. 천천히 다시 연습해 보자.” 필립이 무릎을 꿇고 왼발잡이인 휴거의 오른발을 축구공 뒤편으로 끌어당겼다. “공을 차는 건 두 번째야. 먼저 오른발을 어디에 둘지부터 생각해. 오른발만 제자리에 놓으면 공은 마술처럼 저절로 날아갈 거야.” 입을 굳게 다문 휴거가 필립의 말대로 날렵히 몸을 움직였다. 휴거가 찬 공은 높이 떠올라 골대를 향했다. “골~인”. 신이 난 휴거가 활짝 웃으며 필립에게 안겼다.

 로즈미니 고등학교는 이 지역의 비영리단체(NGO)인 세이퍼노스(Safer-North)와 함께 지난해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 2학년생 100여 명은 모두 매주 한 시간씩 자신의 재능을 살려 동생들을 가르친다. 내성적이었던 필립은 올 초부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동생들의 선생님 역할을 하며 성격이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필립은 “누군가에게 봉사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스스로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이퍼노스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오클랜드시 브라운스베이 해변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윤석만 기자]

 멘토링 프로그램에는 체육과 문학·미술·토론 등 10여 개 수업이 개설돼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과목을 골라 동생들을 가르친다. 문학 등 일부 과목은 다른 지역의 13개 초등학교와 결연을 맺고 온라인으로도 수업을 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이 직접 웹카메라를 통해 컴퓨터 앞에서 강의를 하면 초등학생들은 자기 교실에서 컴퓨터와 연결된 TV를 통해 수업을 듣는다. 로즈미니 고교의 멘토링 담당교사 제프 우드(62)는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성숙한 어른이 되는 법’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며 “봉사만큼 학생들에게 훌륭한 교육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교과목과 관련된 수업 말고도 초등학생들에게 생활안전 교육을 하기도 한다.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 화재 시 대피하는 요령 , 다치지 않고 자전거 타는 방법 등 본인이 체험을 통해 배운 안전 노하우를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우드 교사는 “꼭 특별한 재능이 있진 않지만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도 청소년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세이퍼노스는 지난해부터 오클랜드시청과 기업, 지역 학교 등과 손잡고 청소년 봉사 프로젝트(Youth Outreach Project)를 실시하고 있다. 연초에 시청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역과 단체 등의 수요를 파악해 요청하면 세이퍼노스가 그에 걸맞은 봉사 프로그램을 짠다. 학생들은 ‘나무심기 ’ ‘난민돕기 ’ ‘해변청소 ’ 등 세이퍼노스가 개설해 놓은 프로그램 중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골라 봉사를 한다. 로즈미니 고등학교처럼 개별 학교가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하고 세이퍼노스가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여러 학교 학생들이 연합으로 참여키도 한다.

 봉사에 필요한 자원은 기업들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오클랜드시의 버스회사인 NZ버스는 무료 승차권이나 단체버스 등 봉사 때 필요한 교통수단을 제공하고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웨스트팩은행은 묘목(나무심기), 청소도구(해변청소) 등의 물자를 지원한다. 웨스트팩은행의 프로그램매니저인 내털리 드리스쿨(38·여)은 “기업의 가장 큰 사회공헌은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좋은 품성을 갖고 자란 아이들은 미래에 훌륭한 고객이 되기 때문에 기업에도 이익”이라고 말했다.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이주민들이 함께 사는 뉴질랜드는 전통적으로 ‘더불어 사는 교육’을 중시한다. 2005년 교육 과정을 개정해 유치원과 초·중등 교육의 핵심 목표를 제시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타인과 관계 맺기와 사회에 대한 참여 및 공헌이다. 뉴질랜드 유치원연합회 크리스 스미스 대외협력국장은 “유치원에서 제일 강조하는 교육은 친구를 배려하고 약자를 돕는 인성을 키우는 것”이라며 “타인과 조화롭게 어울려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 뉴질랜드 교육의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오클랜드(뉴질랜드)=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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